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1.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도가 된 것은 자신이 원해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과 같이 그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으며, 그는 율법학자였습니다. 또한 그는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고자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예수님을 만나고 ‘회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부름 받았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인간적으로 혹은 당시의 사회적인 환경 속에서 보면 ‘예수를 믿는다’ 혹은 ‘예수를 전하는 사도다’라는 말은 굉장히 불편하게 여겨졌습니다. 유대인 사회에서는 ‘이단’으로 여겨졌고, 로마 사람들에게는 ‘피를 마시는 야만인’ 혹은 ‘체제 비판자’ 등으로 여겨지곤 하였습니다.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지키고 따르면서 ‘학파’를 매우 중요시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때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헤롯 당’, ‘열심당’ 등 매우 많은 ‘줄 서기’가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비슷합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이 어디에 속했느냐에 따라서 자신에 대한 이해와 자리매김이 달라집니다. 마치, 오늘날 정치에서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어떤 정당에 속했느냐에 따라서 국회의원이나 시의원에 당선되곤 합니다. 결국 자신의 출세 혹은 자신의 삶, 자신의 인생과 가족의 행복 등이 이러한 ‘줄서기’ 혹은 ‘어느 파에 속해 있는가’ 에 따라서 삶의 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삶은 예전에만 혹은 정당정치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도 일반적으로 나타납니다. 여러분들이 교회생활에서도 어떤 사람의 라인을 따르느냐? 혹은 사업을 하면서도 어떤 사람과 협력을 하느냐... 는 등 모든 일에서 그렇게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홀로 서려고 하다보면 항상 듣는 말이 ‘너는 독불장군이냐?’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이러한 비난과 비판을 사도 바울은 매우 심하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들의 파로 들어오도록 하는 유혹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 곧 부르심의 첫 번째는 ‘하나님의 뜻대로’라고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2. 두 번째로, 그의 정체성은 ‘사도’입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누군가의 메시지를 받아서 전하도록 사명을 받은 사람을 ‘사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신앙의 정체성을 분명히 ‘사명을 받은 사람, 전하기 위해서 보내어진 사람’으로서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사도’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사도’라는 직분 자체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에게는 무엇인가 조금 더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민자로 살아갑니다. 이민을 내가 결정해서 혹은 누군가의 말에 이끌리고 손에 이끌려서 오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나를 이곳에 ‘보내신 분’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나를 이곳에 정착하게 하신 분이 계시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이 땅에 살아가면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곳에 보내셨고, 나를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분명히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장에 하나님이 나를 보내셨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세 번째로, 그는 자신의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분이 누구인가를 분명히 합니다. 그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전해야 할 메시지를 주신 분이 ‘그리스도 예수’라는 사실을 분명히 합니다.
여기에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듯이, 오늘 저와 여러분도 신앙의 정체성 곧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라는 고백이 여러분들의 고백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이 자기인식 곧 자신의 정체성을 단단하게 세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이민자로 살아가는데, 가끔은 아이들이 ‘브라질 사람’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는 듯합니다. 저도 브라질에서 살아가다보면 누군가가 저보고 일본사람 혹은 동양사람 하고 부르면, 나를 부르는 것인지를 모르고, 뒤를 돌아보곤 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자녀들 혹은 1.5세 되시는 분들은 이러한 경험을 더욱 크게 하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우리의 삶에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즉,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냥 ‘세상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내 정체성은 ‘하나님의 백성’인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잊어버리고 세상에 속한 사람인 줄 알고 살아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브라질에서 살아가고, 포르투갈어를 잘하고, 문화를 잘 한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람의 뿌리가 있다는 것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그처럼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 살아가고 있고, 세상 사람들과 한데 뒹굴어가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하더라도 세상에 속한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비록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않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