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란 무엇인가)기독교의 본질-26
2018/10/25 20:30 입력  |  조회수 :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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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성결교회 양성환 선교사(오레곤선교교회 파송)
 
성서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
 교회가 시작된 이후로 기독교 신학은 암시적으로든 명시적으로든 성서의 권위를 인정했다. 성서가 어떤 종류의 권위를 가지는가의 문제이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권위는 성서가 선포하는 자유케하는 소식,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죄인을 은혜로써 받아주신다는 복음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성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화해의 활동에 대한 독특하고 대치할 수 없는 증언이다. 성서는 성령의 능력 안에서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하여 우리의 삶을 변혁하는 역사를 이룬다.
 가. 신약성서의 공동체는 세 가지 규범이 되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다. 즉 (1) 구약성서 (2) 예수를 눈으로 보았고 그의 말씀을 귀로 들은 자들인 사도들 (3) 구약성서와 사도들에게 규범을 부여하는 주님. 이 세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한다는 점에 있어서 일치한다. 허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는 말씀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말씀에 대해 우위를 가진다. 사도들의 말씀이 교회의 기초가 된다면 그리스도는 기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모퉁이돌이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먼저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에게 말로 전달되었고, 사도들이 사망한 후에, 주후 1세기 부분적으로 글자로 기록되었다. 이 기록된 말씀이 사도들의 말씀을 대신하게 되었다. 특히 영지주의, 몬타니즘 등 이단설은 기독교 신앙을 변질시키고자 하였기에 교회는 말로 전해오던 더욱더 문서화하며 이 문서를 정경화 곧 규범으로 확증해야 할 필요성을 갖게 되었다. 그 후에 주후 4세기에 이르러서야 27권이 정경으로 확정되었다.
 나. 종교개혁과 정통주의 성서관-종교개혁에 있어서 성서의 원리는 교회 중심적 원리를 형성한다. 루터는 중세 교부들의 성서의 은유적, 영적 이해를 거부하고 문자적 이해를 주장한다. 성서는 “그 자체를 통하여 명확하고 확실하며 그 자신의 해석자”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교회와 전통의 보증이나 해석이나 해명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루터의 견해에 의하면 성서의 중심은 그리스도이다. 그러므로 성서는 그리스도의 빛에 의하여 해석되어야 한다. 개신교 정통주의에 기본적인 명제는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데 있다. 하나님은 성서 기자에게 성서를 써야 할 “충동”과 “내용”뿐만 아니라 “글자들”까지 영감을 주셨다. 성서 기자들은 성령의 “손”이요 “펜”이며 “기록판”이다.
 다. 계몽주의 시대 성서관-계몽주의 시대의 개신교 신학은 성서는 다른 책들과 같이 역사적인 책이며 역사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인간적인 책”으로서 다른 인간적인 책들과 같이 이해되어야 한다. 성서의 권위는 차츰 상실되고 인간의 이성과 종교적 자기의식이 대신했다. 이 시대 신학의 거장인 하르낙은 성서의 핵심을 “성부 하나님, 섭리, 하나님의 자녀, 인간 영혼의 무한한 가치”라는 네 가지 요소로 요약하였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근원적인 말씀이라는 사실이 거의 망각되었다.
 라. 정경의 기준-정경이란 기독교의 모든 선포에 있어서 규범이 되는 것, 혹은 기독교 “기독교의 진리의 규범”을 말한다. 기독교의 모든 이론과 실천은 성서에 의하여 검증되어야 한다. 왜 오늘날 성서의 66권만이 정경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첫째는 내용 자체에 있다. 이 내용은 한마디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다. 정경의 중심적 내용을 형성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데에 있다. 신약성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증거한다. 둘째 기준은 사도성에 있다. 신약에 있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들은 사도들로부터 혹은 이 사도들의 제자들로부터 유래한 증언이다. 셋째 기준은 성령의 내적 증언에 의지한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가진 정경을 정경으로 보증하기 때문에 우리가 가진 성서가 정경이 된다. 그러므로 교회가 정경을 결정한 것이 아니라 “성서가 자기 자신을 정경으로 만든다. 성서가 교회에 큰 인상을 주었고 언제나 다시금 주기에 성서는 정경이다” 성서는 그 자신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명한다. 왜냐면 하나님이 성서를 그의 말씀이 되게 하며, 하나님이 그것을 통해 말씀하기 때문이다.
 마. 정경과 교회권위의 관계-교회의 권위가 성서의 정경성에 대한 규범이 될 수 없다. 이에 반하여 로마 카톨릭교회는 정경에 대한 결정이 교회의 권위에 있다고 말한다. 그들은 정경은 교회의 전통에 의하여 형성되었으며, 전통이 신앙의 제 2원천으로 말한다. 허나 정경을 정경되게 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정경 자신이다. 달리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회상과 그의 약속이 정경 속에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그 속에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하기에 그것은 정경이다. 교회는 이것을 순종하는 자세로 인정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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