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학 박사수료)
룰라, 보우소라누 그리고 하다지
대통령 선거가 코 앞입니다. 브라질 정치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 간 권력을 잡았던 진보세력 노동자당(PT)의 룰라(Lula)가 40%의 지지율에도 옥중 출마를 포기 했습니다. 강경 보수의 보우소라누(Bolsorano)는 마치 과거 군부를 연상시키는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지지세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이제 룰라의 공식 후계자 하다지(Haddad)는 PT의 대대적인 진영논리에 힘입어 보우소라누의 대항마가 될 기세입니다. 결전의 시간이 가까울 수록 지지층의 양극화는 심해지고 다른 진보 후보인 고메즈(Gomes), 그리고 중도인 아우크민(Alckmin)과 마리나(Marina)는 운신의 폭이 좁아질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지난 몇 십년간 가장 예측이 안 되는 대선이라고 하지만 결국 누가 되던 진영논리(陣營論理)와 이합집산(離合集散)은 브라질 정치를 어렵게 할 것이 분명 해 보입니다.
브라질 정치는 아직도 실험 중
대선 정국을 보며 브라질 정치의 특징을 보게 됩니다. Jan Rocha(1999)의 『Brazil in Focus』에 따르면, 브라질 정치는 아직도 실험 중입니다. 지난 10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군주제, 공화제, 연방제를 경험했고 의회, 민간 대통령, 군부, 장군 그리고 부통령들이 나라를 이끌었습니다. 대통령들의 자살, 하야, 탄핵의 사례에서 보듯 정치권력을 잡는 것은 언제나 위험을 내포합니다. 정치 제도와 정치 주체가 자리잡아 성숙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부족합니다. 둘째, 브라질 정치는 언제나 양극화의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식민지, 노예제, 의존성의 역사적인 뿌리는 풍부한 자원, 지정학적 환경과 만나 고질적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열매로 이어졌습니다. 한 쪽에서는 성장과 규율을 중시하며 진보 세력의 대중연합주의를 비방하지만, 또 다른 한 쪽에서는 분배와 정의를 중시하며 엘리트와 기득권층을 공격합니다. 성장과 분배의 문제, 엘리트와 민중의 갈등은 정치를 양쪽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셋째, 정당 정치의 실종입니다. 정당이 대중의 권력을 위임 받아 책임 있는 정치를 하는 것이 대의 민주주의의 근간이지만 브라질 정치 역사를 보면 언제나 정당보다 이해집단(interest group)이 먼저였습니다. 군주제시절, 소수의 지배 엘리트들은 정당의 형성을 억눌렀습니다. 공화정시절, 행정부는 소수의 지역 과두정치(寡頭政治)세력과 손잡고 정당의 출현을 막았습니다. 최근 지우마 정부도 연정으로 권력을 잡았지만 결국 이것이 발목을 잡아 무너졌습니다. 브라질에서 정당이 하루아침에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은 비일비재합니다.
이민자들의 거버넌스 정치참여
아직도 실험중인 정치제도, 뿌리깊은 양극화, 그리고 약한 정당정치는 정부 중심의 국정 운영인 거버넌트(government)의 산물이라고 할 만 합니다. 하지만 최근 정치학에서 정부와 시민사회가 협력하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거버넌스(governance)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거버넌스’는 시민 사회가 문제의 결정에 참여하여 투명성하고 책임 있는 민주적인 정치 공간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이 시점에서 다문화, 다인종 사회인 브라질에서 이민자들의 역할에 주목하게 됩니다. 특히 한인들은 소수이지만 강한 연대와 책임감으로 민주적 거버넌스의 좋은 실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난 5월말 브라질 한인회가 주최한 ‘한국인의 문화행태적 특성에 대한 교육강연’은 현장에 근무하는 군경에게 한인들의 문화를 소개하며 소통하는 거버넌스 정치참여 공간 확대의 좋은 사례였습니다. 선거, 정당참여, 로비활동과 같은 전통적인 정치 참여는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민자 사회가 투명성과 책임감을 가지고 현지 사회와 잘 어울려 살 수 있는 정치 공간을 마련하는 거버넌스의 정치의 실천도 간과해서는 안될 문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