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덕 장로(빅토리아 순복음교회)
지금처럼 약방과 병원이 흔하지 않던 시절인 1940년. 경기 여주 인근 지방에서 침술과 박수 무당인 저희 아버지의 유명세는 대단하였습니다. 그 박수 무당의 계승을 이어 받을 외아들로서 저는 친척과 또한 많은 사람들로부터 금동이라고 불리우며 향내음과 불경으로 가득찬 곳에서 자기네의 신처럼 떠받들고 있었습니다. 그런 나와 예수님과는 아무런 관계를 가질 수 없는 사람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사람을 예레미야 1장 5절~7절 말씀대로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계획 안에 오늘 이런 간증대에 세우셔서 나 이런 하나님이란 것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 글은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저의 간증을 통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나를 선택하신 이유의 스토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심)
늘 저희 사무실에는 토요일이면 반갑지 않은 손님이 옵니다. 어김없이 오늘도 친구들과 함께 화투 돈 따먹기로 한참 끗발이 나고 있는데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전도지를 내밀며 “사장님 예수 믿으세요”... 이 소리에 친구들이 웃으며 “박사장 예수 믿으래요”라는 놀림에 나는 화가나 “아저씨 다른데 가 봐요. 예수를 믿느니 내 주먹을 믿어요. 아저씨나 예수 믿고 천국 가세요” 멀쩡한 사람보고 죽어 천국 가라니 기분이 또 상하였습니다. “제발 오지 마세요. 나 천당표 사놓았습니다” 강제로 떠밀어 밖으로 내어 보내면 결국 문틈으로 전도지를 꾸겨 넣고 갑니다. 토요일마다 귀찮아 피해 다니면 얼마나 잘 보는지 어느새 따라와 전도지를 주고 갑니다. 나에게는 너무 귀찮은 사람이였습니다. 욕을 해도 화도 낼 줄 모르는 좀 모자란 사람 같기도 하였습니다.
(사업실패 후 만난 전도 집사)
그 후 제가 사업에 실패를 하고 그 집사님을 찾아 교회에 가서 집사님을 붙잡고 용서를 빌었지만 그 집사님은 “내가 아니고 지금 오셨으니 예수님이 용서하시고 오신 것을 환영하십니다. 오실 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만난 집사님은 결코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였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한 동기)
저는 사업을 하면서 한탕에 돈을 벌 욕심을 내다 결국 실패를 하였습니다. 사업에 실패 해 본 사람은 모두가 겪는다는 사람소리에 놀라고, 전화소리에 놀라고, 자동차 소리에 놀라는 경험을 하면서 정말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빚 독촉에 시달리고 있을 때에 4살 먹은 딸아이가 갑자기 다리가 오그러져 방바닥을 기어다녔습니다. 도대체 솟아날 구멍이 보이지 않는 이 지경에도 딸을 고쳐 보려고 굿을 하고 약을 사다 먹이고 병원에 가봐도 병명도 모르니 더욱 답답하기만 하였습니다. 차리리 죽자는 마음에 집단 자살을 하려고 “여보... 청산가리 넣은 김밥 좀 만들어... 소풍 간다고 애들을 데리고 가서 같이 먹고 죽읍시다”라고 말하던 중에 전화가 왔는데 목사님과 결혼한 처제였습니다. “개척 교회를 세웠으니 언니도 교회를 나오라”고 하는 처제의 전화를 내려 놓으면서 안사람은 “여보... 화장품 장사가 전에 그러는데 아픈 사람이 교회에 나가 목사님한테 안수를 받았더니 병이 다 나았다고 하던데 답답하니 우리도 한번 가 봅시다”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간 교회)
그날 처음 수요 예배에 참석해 목사님께 딸 아이가 다리가 오그라져서 왔다고 하니 온 성도들이 합심하여 기도하고, 목사님께서는 안수를 해 주었습니다. 안수를 받아도 차도가 없어 그냥 집에 와 잠을 자다 생각이나 아래목에 덮고 자는 이불을 혹시나 하고 들쳐보았습니다. 다리를 잡고 펴려고 할 때마다아프다고 울던 딸 아이는 오그러졌던 다리를 쭉 펴고 평안히 자고 있었습니다. 너무 신기해서 잠자는 안사람을 깨워 보여줬더니 “여보 정말 신기하네. 어떻게 이럴수가 있어요”하며 바로 목사님께 전화를 하여 이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목사님 아이가 다리를 폈습니다” 목사님께서는 “네 그게 순서입니다. 내일 가겠습니다”하며 전화를 끊고 이튿날 오셔서 축복해 주시고 성경책을 주시고 가시며 “이 가정에 구원이 이루어 졌습니다”라고 말씁하셨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