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현 목사(헤브론교회 담임)
[사도행전 9:1-9]
사도행전에서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을 하나 고르라고 한다면 사도행전 9장의 사울 회심장면일 것입니다. 사울(그는 나중에 신약성경을 13권이나 기록하고 소아시아와 유럽에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이 됩니다.) 그는 다소 출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가문은 로마 시민권을 얻을 정도로 부유했지만 유대인의 정체성을 중요시 했기에 사울을 예루살렘에 유학을 보낼 정도로 영적 열심이 있던 가문이었습니다. 그를 가르친 랍비는 당시 유대인 최고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사울은 율법 전문가인 바리새인으로 길러졌고 유대 최고의 랍비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헬라어에 능통하였고 또한 히브리어와 아람어에도 능했으며, 로마어인 라틴어까지 능통하였습니다. 그런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가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의 길을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1-2절입니다. “사울이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대제사장에게 가서 다메섹 여러 회당에 가져갈 공문을 청하니 이는 만일 그 도를 따르는 사람을 만나면 남녀를 막론하고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라” 1절에 ‘살기가 등등하여’의 원어적 의미는 ‘호흡하다’ 입니다. ‘오직 그런 생각으로만 꽉 찬 상태’를 나타냅니다. 사울은 자신의 신념으로 가득했고 그의 잘못된 확신과 강한 신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핍박하고, 교회를 잔멸하는 악행으로 변질 됩니다.
3절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사울이 자신의 길을 가는데, 다메섹(다마스쿠스=현, 시리아 수도)에 가까이 왔습니다.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었습니다. 사울이 빛을 찾은 것이 아니라, 빛이 사울을 먼저 찾은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우리가 주님을 찾기 전에 먼저 우리를 찾으십니다. 4-5절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사실 사울이 핍박한 것은 교회와 성도였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왜일까요? 주님은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간주하시며 동일시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사울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벗어난 길이었고, 그 결과 예수님을 박해한 길이 됩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길을 가고계십니까? 나를 위한 길입니까? 내 신념을 위한 길입니까? 바라기는 주님을 위한 길을 걸으시길 소망합니다.
8절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 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사울은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지만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보지 못할 뿐 아니라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던 사울은 자신이 박해한 그리스도인의 손에 이끌려 주님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는 박해자에서 전도자로 새로운 길을 가게 됩니다. ‘내 자신을 위한 길을 가다가 주님을 위한 길을 가는 것’을 전문 용어로 ‘회심’이라고 합니다. 회심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가던 길을 돌이킨다”이고 또 하나는 “완전히 바꾼다, 변혁한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회심이란 “가던 길을 다시 돌이킴으로써 새로운 길을 가는 전인격적인 변화”입니다.
존 뉴턴이란 사람은 원래 노예무역에 종사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로 배를 타고 가서 노예를 잡아다가 영국과 유럽의 여러 항구로 실어다 팔아서 큰 돈을 벌어 재미를 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꿈을 꾸었는데 꿈속에서 자기가 노예가 되어 쇠사슬에 묶여서 학대받으면서 끌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진땀을 흘리면서 악몽을 깬 후에 깊이 회개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노예 무역을 그만두고 신학을 공부하였고 영국 감리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애창하는 “어메이징 그레이스”(찬 4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는 존 뉴턴 목사가 자신의 지난날을 회개하면서 지은 시에 곡을 붙인 것입니다. 뉴턴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의 길을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걸어갑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만났다는 증거는 무엇입니까? 바로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주님이 원하시는 길을 가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주님의 역사와 ‘회심’이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