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남철 목사(그레이스성결교회 담임)

 

우리가 미국 올 당시는 한국에는 바나나가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 바나나 하나 먹어보는 것이 그렇게 소원이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서울에서 제주도 밀감을 먹어 보는 것이 그렇게도 꿈이었는데 부드러운 바나나 껍질을 쭉 벗겨서 짤라 먹는 것은 부드럽고 기분 좋고 맛이 그만이다. 그래서 1979년 미국 오자마자 바나나를 얼마나 많이 샀는지 바구니 가득 바나나만 사들였다. 아침 먹고 바나나, 점심 먹고 바나나, 저녁 먹고 또 바나나를 먹었다. 아이들이 더 신나게 먹었다. 아내가 일하는 세탁소 주인 신청일 집사 내외와 허경삼 목사님 내외와 기타 아는 분들을 우리 집에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하고 난 다음에 바나나를 디저트로 내 놓았다. 그랬더니 다 웃었다. 나는 왜 웃는지 알지 못했다. 우리는 식사 끝내고 바나나를 디저트로 거의 매일을 먹었기 때문이다. “디저트로 바나나 잡수세요” “바나나 안 먹어요” “왜 이렇게 맛있는 바나나를 안 먹어요” “ 몇 달 만 지나면 무슨 뜻인지 알 거 에요” 끝내 바나나를 먹지 않았다. 누군가 하나 정도 벗겨서 서로 나누어 먹는 것이 고작이었다. 우리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열심히 잘 먹었는데 그들은 웃으면서 안 먹는다. 한달 정도 지내니까 정말 바나나를 먹지 않게 되었다. 나는 귀한 것으로 생각해서 디저트로 대접했는데 그들은 웃고 넘긴 이유를 그후에야 알게 되었다. 너무 흔하고 자주 먹으니까 질린 것이다.
 동생 네 가정이 미국에 왔다. 어머님도 오셨다. 나는 바나나를 사서 마음껏 잡수라고 드렸다. 동생들도, 조카들도, 어머님도 열심히 먹었다. 조금 있더니 다 안 먹는다고 했다. 가끔 서울로 나가서 동생들과 만났다. 지금은 그 두 동생들이 다 미국으로 왔지만 당시에는 그들이 받는 월급을 가지고는 과일을 실컷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말을 들을 때 내가 과일 실컷 먹여줄 테니까 미국으로 오라고 했다. 그러나 그들은 믿어지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은 평생 소원이 과일 한번 실컷 먹는 것이다. 갈 때마다 만날 때마다 그런 말을 했다. 사실상 그때 당시 과일이 참으로 비쌌다. 미국 오자마자 그들이 원하는 대로 과일을 바구니 채로 사다주었더니 일년을 지내고 나서 “형님 말씀이 옳습니다” 인정을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어디서든지 과일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는 형편들이 되었다. 미국은 과일 천국이다. 한국에서 먹어보지 못하던 과일들도 얼마든지 먹을 수가 있는 것이다. 과일을 많이 먹어서 미국 사람들은 예쁜가. 모두가 아름답고 예쁘다. 얼굴도 예쁘고 다리도 예쁘고 몸매도 예쁘다. 아름다운 땅이요 축복의 땅이다.
 집집마다 과일나무가 많다. 우리 집 마당에도 아프리카트, 복숭아, 자두, 무화과, 사과가 자라고 있다. 주렁주렁 열려 있다. 빨갛고 노랗고 익어서 떨어져도 그 냥 놔둔다. 그것을 먹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마켓에 가서 사다 먹고 집에 달린 과일은 관상용으로 놔두는 것이다. 풍부한 나라 미국이다. 가는 곳마다 과일 나무들을 볼 수 있고 노랗게 익은 과일이 탐스럽게 달려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특히 남가주에는 날씨가 좋기 때문에 과일에 대한 아름다움을 더욱 즐길 수가 있다. 뜰에 달려 있는 복숭아, 사과, 무화과를 따고 싶지 않고 보고 또 보고 싶은 것이다. 우리 집 뒤뜰에 복숭아가 많이 열렸다. 주먹만한 복숭아가 탐스럽게 익었다. 그런데 하나도 먹지 않았다.

교회 장로님이 준 것이나 마켓에서 사 온 복숭아를 먹게되고 뒤뜰의 복숭아는 구경하는 것으로 족했다. 먹지 않는 요인 가운데 하나는 벌레가 생긴다는 것이다. 약을 뿌려주지 않기 때문에 벌레가 생긴다. 그래서 미국 사람들은 위생처리 되지 않은 뒤뜰의 과일을 먹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전 같았으면 열심히 따서 먹을텐데 지금은 먹을 생각을 안 한다. 생활이 그렇게 바꾸어 진 것이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게 되었고 그것이 미국 문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 나도 이렇게 배부른 소리를 하게 되었는지 참으로 감사할 따름이다. 바나나를 디저트로 내 놓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요새는 교회 장로님이 과일을 주셔서 냉장고엔 과일들로 항상 가득하다. 과일 가게를 운영하시는 분인데 맛있는 과일만 파시는 분이다. 엘에이 지역에서는 정스 백화점 과일 가게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하신 분이다. 담임 목사님의 과일은 자기가 책임진다고 하면서 떨어질 때마다 냉장고에 채워 놓는다. 과일을 좋아하지만 그것도 차고 넘치니까 좋은 줄을 모르고 지낸다. 다이아몬드가 비싸고 금은이 값이 나가는 것은 귀하기 때문이다. 돌이 무가치한 것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세상의 것은 모두 상대적이다. 바나나도 희귀할 때는 매우 맛있고 가치 있는 것이었으나 흔한 환경에서는 인기가 없는 과일이 되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과일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귀한 줄을 모르고 지내고 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이것을 축복이라고 해야 할지 복에 겨워하는 이야기라고 할지 너무나 좋은 사람들, 너무나 좋은 세상을 만난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때도 오는구나 생각하면서 좋은 일 많이 하자라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