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축복의 통로”, “소통”, “관계성” 이런 아름다운 말들이 난무한다면? 좀 심하다 할까? 많은 세상 사람들 불신자나 심지어는 정치인들 까지 그 말들 중 일부는 쉽게 쓰여지는 말들이고 보니 무척이나 친숙하면서도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그 말들이 능력이 되어 현실이 되어지고 있는가? 아니면 말로만 떠돌다 없어지는가? 주님은 자기 백성(회개하고 예수를 믿는자)이라면? 누군가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한결 같은 관계를 가지고 소통의 길을 열어 놓으셨건만 우리는 과연 하나님 앞에 진실한 소통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하는 사람에게 잘 하는것? 골라서 소통하는 것? 밀어내고 싶은 사람은 밀어내고 가까히 하고 싶은 사람에겐 다가가는 관계! 이것은 분명 주님이 원하시는 아가페의 사랑은 아니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나만은 합격이라고 자유할 자가 있다면? 주님이 얼마나 기뻐하실까 마는 장본인이 혹 나는 아닌가? 라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던지며 깨지고 부서지고 녹아지기위해 철저히 회개하며 엎드려야겠다. 기도의 무릎을 꿇는다 주님께...”마음을 열어 주소서” 과연 하나님이 원하시는 소통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 관계, 거짓 없는 믿음 안에서 적어도 바리새인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다가가는데 밀어내는 아픔을 주는 자만은 되지 말아야겠다. 혼란에 빠져 허덕이는 내게 하나님은 “평화의도구”라는 복음송과의 인연을 맺게 하셨던 은혜를 기억하게 하셨다.
선교사로 브라질 땅을 밟기 훨씬 전이였으니까 아마도 삼십년은 훨씬 넘은 옛날이였다. 뉴욕에 있는 효신교회 교육관에서 밤을 세우며 기도를 드릴 때였다. 방언이 계속되면서 고장난 레코드가 제자리를 돌듯 같은 말이 되풀이 되었는데.... 입에서는 같은 말이 계속 흘러나와 나 자신의 귀에 들어온다. 139장 139장 이라는 말이 계속 되는데 자신이 자신의 소리를 자신의 귀에 들리게 하셨다. 처음 있는 일이고보니 의아해서 눈을 뜨고 찬송가 139장을 펼쳐 보았다. 그 찬송가는 “생명의 주여 면류관”이라는 찬송이였고 당시 난 몰랐던 찬송이였다. 마음 속에서는 그 찬송이 아니라는 음성이다. 진 종일 마음 속에서는 139장이라고 소리쳤다. 그 날이 마침 수요일이였고 저녁예배에 교육 목사님이셨던 문석호 목사님(현 뉴욕 효신장로교회 담임)이 인도를 하셨다. 목사님께서 복음송 139장을 부르자고 했다. 피아노 소리에 마추어 드디어 “평화의 도구”라는 제목의 복음 찬송이 시작되자 마음의 창이 활짝 열리면서 기쁨과 희락이 파도가 밀려 오듯이 마음 속을 꽉 채워 버리는 것이 아닌가? 마음 속에 “이거다 어제 밤 그토록 반항 할 수 없는 그 어떤 힘이 입술을 주장 하더니..... 방언 속에 139장이라는 말을 연발하게 하시더니 그 찬송이 바로 하나님이 내게 주신 찬송임을 금방 알게 하시면서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래 하나님께서 날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주신 내꺼야 내 찬송이라구... 감사와 감격이 온 몸을 감싸고 개인적으로 구체적으로 사랑해주신 주님의 그 사랑 때문에 찬송을 부르는 내내 뜨거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내게 그렇게 살고 그렇게 사역하라고 밤이 맞도록 내 입술을 주장하셨더라는 말이다. 내 생에 놀라운 하나님의 선물이였음을 조금도 의심치 못하게 하셨던 특별하신 하나님의 은혜요 경험이였다. 그 이후로 하루에 한 번씩 그 복음송을 부르며 경건의 훈련을 하려고 뼈를 깎는 심정으로 살려고 애썼던 그 시절을 기억케 하시면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사랑은 이렇게 하는거야”라고...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상처가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심게 하소서....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단 구원은 언제나 회개한 자의 것이며 공의와 사랑이 공존해야 한다는 진리는 변함이 없음을 믿는 마음이다. 길거리를 걸을 때도 죄가 마음에 들어 올까봐 계속 성경 말씀을 암송하며 중얼거렸고 동적인 기도를 쉬지 않으며 매사에 주님께 물어 보았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늘 생각하면서 하루 한 번은 그 찬송을 거의 꼭 불렀었는데... 주님은 다시 속삭여 주신다. “회복하라고” 그때로 돌아가라고.... 마음에 다짐하는 동안 드디어 두 시간 17분 만에 과률료스 공항에 도착했다. 수속을 마치고 뻐쓰에 오르고 탑승하는데 까지 시간이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하셨다. 2시간 40분의 비행시간을 거의 글을 쓰면서 주님과 함께 하는 동안 헤씨피 공항에는 밤 10시28분에 도착했다. 어두움이 자리잡은 거리를 한 15분쯤 달려서 도착한 곳은 남편이 예약해 놓은 자그마한 호텔이다. 차가 3대만 주차할 수 있는 작은 공간에 이미 차있었고 안내받은 방은 그냥 그랬지만 이런들 어떠며 저런들 어떠리... 하루 밤 쉬고 갈 나그네 인생 길에 나그네임을 절실히 실감하게 하심 얼마나 감사한가? 능숙하게 이전에 하던대로 밑반찬은 꺼내 작은 냉장고에 채우고 올 때 먹다 남은 주먹 밥과 오이 한개로 저녘겸 밤참을 먹었다. 남편 목사님도 주먹 밥(작곡과 콩과 팥)을 맛있게 먹고나서 꺼내놓은 라면을 보며 “많이도 가져왔구나”하신다. 생각하니 부자된 기분이라... 가져온 선물(옷 죠코파이 넥타이 그리고 인삼켄디)을 꺼내 브라질 교인 중 누구 누구를 주어야 하나 생각하며 내일을 꿈꾸며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잠 자리에 누웠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언11:24) 지극히 적어도 나누며 사는 이들을 축복하며 내일의 사역을 위해 밤은 깊어가고.... 마음으로 조용히 “평화의 도구” 복음 송을 부르며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 그때 그 시절의 믿음을 회복시켜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