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전도서(Eclesiástico)는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한다. 원래 있던 것은 없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은 언젠가부터 있었고 앞으로 있을 것이다. 인간의 수고와 자연의 움직임과 세대의 출현은 계속 될 것이고 앞세대는 현세대에 대체되고 후세대는 현세대를 넘어서지만 이것도 기억되지 않을 것이다. 지나고 보니 다 그래왔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허무한 것 같지만 그래도 오늘을 사는 것은 오늘의 수고가 어제를 딛고 내일을 추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살기위해 무리를 짓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 있고, 외부에서 위협하면 방어하고, 대화하고, 의미 그물망이라는 문화를 만들어 사회를 만들고 국가를 만든다. 본질은 변하지 않는 인간이지만 계속 변하고 싶어하는 것도 인간이다. 이런 인간은 여러 모습의 민족을 만들어 왔다.
아메리카는 흥미로운 대륙이다. 왜냐면 지금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원래 살고 있는 땅에 사람들이 들어왔다. 스페인, 포르투갈,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미국까지 이 땅의 사람들은 넓은 땅과 자연의 품을 가지고 이들을 받아들였고, 거절했고, 기다렸고, 섞였고, 다시 만들었다. 브라질의 지성 인류학자 다르시 히베이루(Darcy Ribeiro, 1922-1997)는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형성을 설명한다. 멕시코, 페루, 과테말라, 볼리비아, 에콰도르, 콜롬비아, 아르헨티나에 걸쳐 있는 마야, 아즈텍, 잉카 문명은 정복자들의 식민주의 행태인 파괴와 약탈의 ‘육체’들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높은 수준의 ‘정신’이었다. 그래서 정복자들은 ‘증인 민족’ (Povos-Testemunho)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무리 밖에서 가져와 바꾸려 해도 바뀌지 않는다. 원래 있던 것이 우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캐나다, 아르헨티나, 우루과이는 이주민들의 나라다. 자신의 것을 가져와 보호하고 새로운 땅에서 자신의 것들을 재현하고 재생산하며 자신과 다른 것들을 힘으로 밀쳐냈다. 사람도 말도 마음도 정신도 원래의 것들과 잘 섞이지 않았다. 그래서 차별도 우열도 말할 수 있다. ‘이식된 민족’(Povos-Transplantados)이다.
히베이루에 따르면 브라질은 ‘새로운 민족’(Povos-Novos)이다. 브라질은 ‘원래’라는 것이 없다. 자연적인 ‘조건’ 밖에 없었다. 포르투갈 정복자, 아프리카 흑인 노예, 프랑스, 영국, 네델란드, 영국, 미국, 레바논, 일본, 중국, 한국까지 받아들인다. 품이 넓다.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 어떤 것도 될 수 있다. 브라질이라는 국가가 있는 이유는 브라질의 정체성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땅에 들어오는 순간 유럽인도, 아프리카인도, 중동인도, 아시아인도, 오세아니아인도 심지어 아메리카인도 아니다. 식민지, 수탈, 폭력, 거절, 공허함, 기억, 자연, 온정, 혼종, 자유를 몸과 마음으로 체험하면서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온 인종적, 문화적, 정신적 유산은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니고 열등한 존재를 인정과 안정을 추구하는 ‘새로운 것’으로 만들어 낸다. 소속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소속될 수 있고 말하지 않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아무도 태어나지 않지만 누구나 태어날 수 있다. 브라질은 ‘만들어진’, ‘만들어지고 있는’ ‘생산되고 있는’ 땅이다. 하늘 아래 새 것이 없다고 한 전도서 지혜자의 외침은 원래 있던 것과 외부의 것을 삼켜서 재조합하고 변형하고 창조할 수 있는 브라질 문화적 정체성을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