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가식: 선의 아닌 교만
그러나 메리는 자신을 타인보다 더 우월한 위치에 둠으로써 자기 내면의 트라우마가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타인에게 구원의 길을 제시하기까지 한다. 마치 자기는 스스로의 방식으로 구원에 도달한 사람인 것처럼.
“당신은 자신이 유리창 안쪽에서 살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삶이 진행되는 것을 보면서, 그러나 실제로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는 않고 있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면 아마도 지금이 당신 내면의 창문을 열어젖힐 때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은 자기 자신의 의지의 주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우리의 꿈을 성취할 또다른 기회를 가질 자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변화가 가능하다고 믿는 순간, 당신은 이미 [그 변화를] 시작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오디오북으로도 출간된 메리 클라인의 베스트셀러 『내면의 창』이라는 책의 텔레비전 홍보문구이다. ‘현실의 팍팍함으로 인하여 과거에 당신이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당신 삶은 그저 창밖에서 삶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면, 그 꿈을 능동적으로 이뤄 감으로써 현실에서 당신의 뜻을 실현하라, 그러려면 당신 내면에 꽁꽁 닫고 있는 창을 열어젖히고 현실 안으로 걸어 들어가라. 그것이 당신 삶을 변화시킬 것이다.’
영화 맨 처음에 메리가 한 말을 기억하는가? “당신이 만든 작동방식. 그것은 유소년기에 당신을 안전하게(safe) 지켜준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이 당신에게 해를 입히기 전에, 그들을 당신으로부터 멀리 밀어내는 법을 배운다. 그리고 지금, 성인이 된 당신은 여전히 바로 그 출발선상에 갇혀 있다. 혼자서.”
그러니까 어렸을 때에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방식이 우리를 구원해 줬는데, 어른이 된 우리는 우리가 스스로 만든 구원에 갇혀 있게 만든다. 왜 어릴 때 우리를 구원했던 방식이, 성인이 된 이후에는 더 이상 구원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어렸을 때, 우리가 우리 방식으로 얻은 구원이 사실은 구원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우리는 그것이 구원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다. 성인이 될 때가지, 그것도 혼자서.
그런데 어렸을 때 우리가 만든 작동방식,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 실은 참 구원이 아니라면,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를 구원하려는 그 방식을 버려야 참 구원에 도달할 것이다. 그러나 메리는 자기 책에서, 바로 그 동일한 어릴 때의 방식으로 성인이 되어서도 구원에 도달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의 창을 열어젖히세요.’ 하지만 그 창은 누가 열 수 있는 것인가? 바로 자기 자신이 아닌가? 또 그것은 자신이 만드는 ‘새로운’ 작동방식이 아닌가? 그러므로 그녀의 말은 모순이다.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베스트셀러라는 것이다. 테이프 3개 세트 오디오북으로 출시할 정도로.
실제로는 조금도 참 구원을 얻지 못하였으면서도, 자기 내면의 더러운 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참 구원을 얻은 것과 같은 모양새를 꾸미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바리새인들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런 그들을 혐오했다. “바리새인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눅 16:14).”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마 23: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