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중 선교사(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박사)
카르도주, 룰라, 지우마 그리고 다시 룰라. 2003년부터 시작된 남미의 거인 브라질 정치지형은 진보-좌파의 물결에 뒤덮였다. 2019년 보우소나루 우파 정권을 생채기로 치부 해버릴 정도로 왼쪽 날개의 힘은 세다. 안으로는 분배와 평등을 추구하는 힘이 여전히 강하다는 것이고 밖으로는 미국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하다는 증거다. 개발과 발전의 동력이 더디고 더 나은 삶의 조건이 꼭 물질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하다. 선동과 구호가 숙고와 실천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말도 된다. 브라질 정치적 담론에서 좌파는 폭넓은 운동장을 쓰고 있는 주인공이라서 언제든지 자기와 다른 진영에 우파의 프레임을 씌워 유리한 위치에서 싸울 수 있다. 정리되지 않아도 앞으로 가고 있고 잘하고 있다고 믿게끔 하는 것도 좌파가 누리고 있는 특권이다. 브라질은 이렇게 되었다. 브라질에 좌파가 등장한 이유는 무엇보다 반미적인 국가 정체성이 작용했다. 자유시장경제의 상징인 미국에 대한 본능적인 저항이 몸에 배어 있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는 미국이라는 독수리의 날카로운 발톱과 부리를 두려워하면서도 물어다 주는 먹이를 거부할 수 없는 약자의 운명을 가지고 있다. 이런 미국이 전세계를 향해 신자유주의(Neoliberalism) 독트린 주사를 주입하던 20세기 말 브라질은 카르도주 대통령의 강한 의지로 팔을 걷어 올렸다. 물가를 잡기 위해 안방을 내어준 결과, 공기업을 시장에 맡기고, 기업의 허리띠를 졸라매고, 모든 영역에 효율을 추구하게 되었다. 결과는 암담했다. 실업률은 치솟았고 대물림되는 사회-경제 불균형과 빈부격차라는 거대한 암초를 스스로 만들었다. 좌파의 뿌리는 1960년대 시작된 권위주의정권로 올라간다. 억압과 통제를 거부하던 브라질 DNA는 군인들의 명령에 노동운동으로 반응했다. 노동자들은 다양한 진보세력, 지식인, 예술가들과 연합여 정치세력화되고 노동자당을 창당했다. 리더인 룰라의 당선 이후2000년대 들어서 좌파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최근 영국 BBC와 인터뷰한 좌파의 실세 페르난도 하다지(Fernando Haddad)는 누가 룰라의 후계자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당내 경선(prévia)이 가능성을 최대치로 말해 줄 것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노동자당 46년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당내 경선은 룰라였다. 이후 승계 및 재선으로 20년 가까이 권력을 유지했다. 노동자당은 진보와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정책과 리더십을 경쟁하고 내부부패와 부조리를 개선하는 정치공간이 없는 것 같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아침에는 이쪽 세력과 손잡고 저녁에는 저쪽 세력에 붙어서 무색무취 정치, 마이너스 정치를 해왔다. 급진적인 좌파성향을 감추기 위해 시장경제를 옹호하여 내부로는 중산층의 마음을 훔쳤고 외부적으로는 국제사회를 속였다. 브라질 좌파는 진공상태에서 권력 행사를 하지 않는다. 기존의 지역 정치와 권력의 이해와 부딪힌다. 이 상황에서 정치적 구호와 정책 실행사이의 엄청난 괴리감을 만회하며 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룰라라는 개인 카리스마와 이미지로 버텨왔다. 하지만 앞으로 문제다. 좌파의 리더가 없다. 실력도 없다. 경쟁도 비전도 보이지 않는다. 카르도주가 씨앗을 뿌리고, 룰라가 키우고, 지우마가 포장한 좌파라는 식물을 다시 룰라가 말려 죽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