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모피어스를 만나다(10): 새로운 현실, 새로운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면 벗어날 길 없는 죄악 세상으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롭게 살 수 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제아무리 이 세상이 은폐하려 해도, 제아무리 이 사실에 대한 증거를 감추려 해도, 제아무리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 방식과 규칙으로 살아야 한다고 거짓말을 해도, 이 거짓과 이 은폐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임한 새로운 현실을 덮을 수 없고 막을 수 없다.
왜 그런가? 우선 예수님께서 하신 이 말씀을 보자.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하리라(마 19:29).” 그런데 동일한 말씀이 다른 곳에서는 약간 다르게 나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눅 18:29-30).”
이 두 곳의 말씀은 같다. 그런데 마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내 이름을 위하여”라고 하시고, 누가복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라고 하신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자기 자신과 하나님의 나라를 동일시하고 있으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나라의 실체요 현실 그 자체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을 받아 거듭나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들, 그렇게 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붙어있게 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인격과 정체성을 지니고서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에 살아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구원에 이르는 영생을 받았다고 확신하면서 그와는 전혀 다른 인격과 정체성을 가지고 그의 현실에 살아가는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와 맞지 않다.
그래서 자꾸 천국과 다른 현실, 즉 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인격과 요소들로 자기 현실을 꾸미려 한다. 그리고 만약 그것이 어느정도 성공하면, 이제는 오히려 그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인 것인 양 속이기 시작한다. 그것이 더 쉽기 때문이고, 그것을 더 믿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왜? 그것이 죄의 본성에 훨씬 더 친숙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결국 이 세상에서는 이 세상 방식대로 사는 것이 훨씬 더 성공적으로 살 수 있다고 믿게 된다. 하지만 그것 또한 예수님께서 이미 말씀하신 것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 세상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눅 16:8).”
그러므로 결국 중요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정체성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가 하는 것은 우선 사도신경에 잘 요약되어 있으며,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700년 전 니케아 신조에 더욱 자세하게 요약되어 있다.
“또 우리는 한 분이신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요 영원 전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나신 분이요,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자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니, 나심에도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요 하나님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요, 그로 말미암아 만물이 창조되었고, 우리 사람과 우리 구원을 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셨고, 성령으로 잉태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고, 우리를 위하여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셨고, 성경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아 계시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영광 중에 오실 것이며, 그 나라는 영원무궁하리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