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사람들은 때로 어떤 규칙과 형태와 관습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 있다.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학생은 저래야 한다는, 어른은 이래도 되지만 젊은이는 그래서 안된다는…… 이런 기본적인 생각들은 어떤 틀이 있기 때문이다. 조금은 우스꽝 스럽지만  공감이 가는 재미있는 시가 있어 소개하려고 한다. 함축,  상징, 참여, 이런 것들 때문에 시의 해석이 어렵다는 무거운 틀을 잠깐 내려 놓고, 이정인의 [남자들의 약속]이라는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시를 가볍게 읽으며 평범한 일상 속으로 들어가 보자. 

 [남자가 셋이나 되는 집에서/하나뿐인 여자 마음 몰라준다고/엄마가 집을 나갔다./쓰레기 버리러 나간 엄마가 들어오지 않았다./엄마가 잘 가는 운동장에도 없고/길 건너 공원을 샅샅이 찾아도 없다./나는 쿵쿵거리는 가슴으로/다리 밑에도 살펴 보았지만/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집이 발칵 뒤집힌 줄도 모르고(생략)/엄마 앞에서 남자끼리 약속했다. 양말 세탁기에 골인하기/자기 이불 자기가 개기/신발 얌전히 벗어 놓기/  튀지 않게 오줌 누고 물 꼭 내리기/밥차릴 때 숟가락 놓기……. 손꼽아 보니/어려운 일 한 가지도 없다.] 시 보다 더 웃기는 것은 나의 유치한 질문이다. 시의 내용에서 남자들이 한 약속이 무엇인가 생각한다. 그럭저럭 두 서너 개를 꼽았지만 그리 중요한 내용이 아닌 것 같아 흐지부지 그냥 넘어간다. [새벽에야 돌아온 엄마, 차 안에서 음악 듣다 그만 잠들었단다] 생략된 부분을 마저 읽으니 완전 반전이다. 엄마가 집을 나갔다고 생각한 것은 아이들이고 스스로의 잘못된 점을 깨달은 것도 아이들이다. 엄마가 내 눈 앞에 당장 보이지 않으면 일단 엄마는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만들어 낸 고정된 틀인지도 모른다.

 별것 아닌 일 같지만 알고 보면 실제와 다른 것이 너무나 많다. 일찍 잠을 깨지 못하는 아이는 필경 밤새 게임을 했다고 여기고, 시험 점수가 낮은 아이는 공부를 전혀 안했다고 생각한다. 맛있는 음식을 자식상으로 밀어 놓으면 엄마는 이 음식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이미 굳어져 버린 통념을 쉽게 바꾸진 못한다. 

 여자, 남자, 선생, 부모, 지성인…… 이런 말 뒤에 ‘답게’라는 말을 넣게 되면 상당한 부분이 본래의 속성을  뒤집어 놓는다. 기준이 없는 잡다한 근거없는 이론이 시작될 뿐이다.  

 거리두기가 해제되고 어떤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는 젊은이들이 떼 죽음을 당한 사건이 어이없게도 외국의 축제라고 하는 할로윈 행사에서 일어났다. 마구잡이로 집을 뛰쳐나온 대다수의 20대들이 참사를 당한 사건은 혹시 나의 의지와 판단이 아닌 부화뇌동 하는 심리 때문은 아니었을까! 거리두기의 해제 이후에 일어난 대참사이기에 더욱 안타깝기만 하다.

 가정교육이 절실하다는 생각이 생뚱맞다. 여자가 밤 늦게 다님을 용서하지 않으셨던 부모님의 걱정이 새삼, 이제와 고마움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틀이라는 것이 때로는 인간의 부족한 판단력을 잡아주는 끈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여기며 틀을 벗어나려는 생각보다 틀을 울타리 삼아 생각의 방향을 자리 잡는다면 어떨까? 복잡한 마음으로 하루를 마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