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여유가 있는 시간이라고 여겨질 때 나 아닌 다른 사람은 무엇을 할는지 괜한 궁금증이 드는 날, 복면가왕이라는 음악 예능프로그램을 보게 되었다. 얼굴에 가면을 쓰고 노래를 불러 시청자들에게 궁금증을 자아내고 꼭 가수라는 직업을 가진 자가 아니더라도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다는 통념적인 편견을 깨는 음악 방송이다. 수업 중 어느 여학생이 손을 들기에 궁금한 질문이 있는가 했더니 엉뚱하게도 이번 주에 ‘복면가왕’을 봤냐는 것이다. 당연히 한 주도 거르지 않고 정기적으로 보았을 것을 전제한 아이의 질문에 당황하여 그냥 한 두 번 본 적은 있지만 일부러 방영 날짜를 기다리며 보는 방송은 아니라고 말했다. 대답을 하고보니 왜 내가 소상히 그 대답을 해야만 했는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즐겨 보던 드라마와 연결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가끔 아이들에게 한국 방송 프로그램 얘기를 하곤한다. 이유는 우리가 배우는 과제 중에 예능, 혹은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핑계 삼아 볼 수 있는 당당한 시청이다.
‘태양의 후예’라는 드라마에 이제는 모두가 다 알만한 남자 주인공 때문에 가슴앓이들을 하며 한국 뿐만 아니라 다른 이웃 나라에서까지 한동안 난리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와 발을 맞추지 못해서인지 인간 본연의 자연스런 깊이를 느끼지 못해서인지 아무튼 진한 감동의 드라마는 아니었다. 작가들이 보통 글을 쓸 때에 대중의 인기를 무시할 순 없다. 보통의 사람들이 다 알만한 얘깃거리도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을 그들이 해내기 때문에 대중들은 그냥 작가의 글 기술에 의지하여 해결되기만을 바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작가는 보통 글의 주제를 선택할 때 이런 것들을 고려한다.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상황들에 초점을 잡거나 아님 잊혀진 것에 대한 추억을 되살리는 일, 여기에 한 가지를 덧 붙이자면 가족간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애환이다. 현재의 상황이나 실정을 배제하면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하다며 대중들은 외면해 버린다. 또 현실에 맞는 얘깃거리에만 중점을 두게 되면 얄팍한 유행을 탄다고 하거나 비슷비슷해 누구나 할 수 있는 개성 없는 문화적 활동이라고 비웃는다.
2000년도에 발표한 조창인의 소설 ‘가시고기’는 영화와 드라마로 더 유명해진 원작이 소설이다. 아버지의 부성을 극대화하여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한 최루성 소설이라는 꼬리가 붙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위치가 한창 불안해져 가고 있던 그 현실에 멋진 안타를 친 적격의 소설이라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소설 속에 아버지의 이미지보다 더 인상 깊었던 배우 정보석과 백혈병에 걸린 열 살 짜리 아들, 유승호의 눈물 연기는 그야말로 명품이다. 얼마 전에 방영된 드라마에서 멋진 청년, 변호사의 직업을 가진 아들이 치매에다 억울하게 누명까지 쓴 아버지의 억울함을 풀어 준 내용의 드라마, 리맴버는 아니러니 하게도 유승호가 청년이 되어 치매에 걸려 억울하게 죽어간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는 역이었다. 그 뒤를 이은 드라마 ‘기억’도 배우 이성민 씨가 역시 치매에 걸린 변호사의 역할로 어린 아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파헤치는 드라마다. 두 드라마의 제목과 사건, 주인공의 약점인 치매라는 병이 같은 글감이지만 그렇고 그런 얘기가 되지 않은 것은 역시 가족간의 사랑과 진실이 상당한 부분에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겠고 무엇보다도 주인공의 명품 연기가 더 큰 몫을 했으리라. 인간의 삶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 매스컴이라는 새로운 장르와 결합하여 또 다른 흥미를 독자에게 안겨 준다. 뿌리 없는 나무는 나무가 아니다. 존재가 불분명하다. 문학과 예능에 담긴 진실은 나무의 뿌리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