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인생이 드라마틱한 연극과 같다는 소리는 명언처럼 흔히 알고 있다. 뻔한 결과인 줄 알면서도 드라마나 소설을 읽을 때 왠지 모르게 빠져들며 결말을 기다린다. 자칫 잘못하면 드라마나 얘깃거리에 빠져 이성을 잃을 수도 있고 판단력이 흐려지며 주인공의 흉내를 내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문학이 우리 인간에게 주는 기능이 무엇인가?라고 헤집어 보면 오락과 교훈이라는 말로 정의를 내리고 억지로라도 그런 기능을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글이 써지는 건 아닐까? 편안하게 어느 인생의 한 길목을 걸어 보는 느낌이라면 좀 여유를 찾을 수 있게 될 텐데 말이다.

 글을 쓰는 문학인들은 왜 그렇게 제 인생을 살기도 바쁜 데 수많은 인생을 만들어 그 인생을 우지좌지 하면서 글쓰기에 몰두하는 것일까? 문학이 인생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과 인간이 체험을 통해 얻은 삶의 진실을 상상력을 발휘하여 언어로 표현하고 싶기에 그러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의 인생이 아닌 다른 이의 인생을 통해 이루고자하는 삶의 욕망을 실현하여 대리 만족을 얻어 보려는 생각 때문일까?  

 70년대 격동의 세월(데모가 한창)을 보낼 때에 누구나 읽고 좋아했던 문학 작품이 있다. 바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다.  

 “너희들은 당연히 너희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 만약 너희들이 계속해 그런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앞으로 맛보게 될 아픔은 오늘 내게 맞은 것과는 견줄 수 없을 만큼 클 것이다. 그런 너희들이 어른이 되어 만들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내용 중에 새로 부임한 담임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한 말이다. 겉으로는 확고부동한 독재체제의 주인공 엄석대 왕국은 6학년 담임선생님이 부임한지 한 달도 안 되어, 겨우 한 나절 만에 산산조각 나고 만다. 담임선생님의 의지가 큰 몫을 차지했지만, 교실 학생들의 ‘민주화 요구’도 상당한 몫을 차지했다.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는 엄석대에 대한 고발과 그를 향한 매서운 화살들. 이 부분은 독자들로 하여금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해준다. 이 작품이 소설적으로 크게 성공하고 있는 부분은 교활한 독재자 엄석대의 일그러진 생애가 아니라 그에 대한 내레이터의 태도, 시각, 그리고 그 해석에 있다. 여기의 내레이터는 엄석대를 그리기 위한 단순한 화자가 아니라 실질적인 행위자로서의 주인공인 것이다. 그러므로 단순도식으로 이룩된 엄석대나 새로 온 담임선생 같은 인물보다는 <나> 한병태가 보여주는 복합성이 이 작품의 높은 문학적 경지를 이루고 있다.

 한병태는 엄석태와 맞서는 인물로서 엄석대의 비리와 횡포를 알아내 선처해 줄것을 요구하나 5학년 전 담임은 방관자적이며 무기력한 현실순응주의자적인 모습을 보인다. 엄석대의 위협이나 속임수에 넘어간 거짓된 것일지라도, 반 아이들 모두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석대를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 비겁한 논리로 떳떳하고 무관한 태도를 보인다. 정의와 진리와 인정이 메마른 현실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매 한 가지다. 다수인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다수인의 의견이 진리가 되어 버린 실정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 혼돈 속에 잠겨 겨우 숨을 쉬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