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찬성 목사(브라질선교교회 담임)

유권사님, 제가 어릴 때 밥상머리는 늘 활기찬 이야기들이 있었습니다. 밥 먹을 때는 조용히 먹으라는 것이 그 당시 분위기였는데 우리 집은 늘 시끌벅적했습니다. 그 중에 아버지의 대표적인 발언은 “‘빤스’(팬티)만 입고 ‘달뵈기’까지 뛰어갔다 오기할래?”이었습니다. 서로 다른 의견이 있을 때 지는 사람이 해야 하는 벌칙 제안입니다.

 달뵈기와 가랑포 이야기

 달뵈기는 우리 시골동네 교회마당이 앞 동네로 달이 잘 보이는 곳입니다. 겨울에는 곡식을 다 거둔 빈 마당에서 연날리기를 하기도 하고 정월대보름에는 거기서 쥐불놀이도 하는 곳입니다. 얼마 전 86을 일기로 세상 떠나신 어머니는 당신이 확실히 이길 수 있다고 판단되면 그러자고 동의하셨습니다. 우리 삼남매는 머리가 클 때까지 그 밥상머리에서 경쟁을 하고 협상에서 이기는 법, 벌칙을 주고 상대방을 설득하는 법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 때 전수받은 승부에 대한 욕심이 요즘 가끔 두 식구 밥상머리에서 무심결에 나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기도 합니다. 밥상머리의 추억은 또 있습니다. 당시 가랑포에 대한 추억입니다. 어릴 때 허옇게 소금기 핀 논바닥을 보면서 물어 알았습니다. 강화도는 원래 몇 개의 섬이 간척사업으로 하나가 된 섬이라고 합니다. 내가 어릴 때 살던 마리산 아래동네 문산리 ‘박세이’‘정촌말’은 우리 조상들이 누대로 살던 곳입니다. 마리산 주봉을 중심으로 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가운데 커다란 갯벌이 있었고 그 바다를 건너면 진강산을 중심으로 오늘날 양도면이 있습니다. 사리 물때 따라서 바닷물이 넘칠 듯 넘실거리기도 하고 조금 때는 실뱀장어처럼 물길이 가늘어지기도 했습니다. 선수 쪽 바다 입구와 사기리 쪽 바다를 막으면 수천만 평 육지가 생기고 엄청난 논밭이 생길 것을 안 우리 조상들은 주민들을 동원해서 간척공사를 했고 동막이란 이름이 생겼습니다. 반찬이 없는 밥상 머리에 며칠동안 계속 같은 반찬이 올라오면 아버지는 슬쩍 ‘동막 하숙집 무짠지’아야기를 꺼내셨습니다. 처음날은 서너조각 굵은 무짠지가 다음 날에는 채를 썰어 물김치처럼 나오고 그 다음날에는 고춧가루에 무쳐 나와 같은 반찬을 여러 번 올리는 것 ‘동막 무짠지’로 줄여 부르며 반찬 투정을 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그래서 하숙을 하는 동안에도 ‘동막무짠지’현상은 계속되었고 그것이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도 가끔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오늘도 둘이 먹는 밥상에서 ‘동막무짠지네’ 하면 벌써 다 알아듣고 배시시 웃습니다.

 동막 무짠지와 강화섬쌀

 유권사님, 바다가 있었던 막힌 땅은 빗물을 모아 놨다 바다로 흘려버리길 여러 해 반복하면서 염기가 빠지고 좋은 논밭이 되었습니다. 그 넓은 땅은 가랑포라고 불렀습니다. 양도에 있던 고려시대의 가능을 관리하던 이들에게 준 땅 가능포가 가랑포란 구전이름이 된 것입니다. 그 간척사업에 동원된 주민들에게는 간척지 땅을 잘라 임금으로 대신 줬습니다. 지금도 그때 간척사업을 한 흔적이 초지낚시터로 남아 있기도 하고 가물이 심한 해에는 여전히 소금기가 땅위로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금기가 약간 섞인 논이어서 밥맛이 좋다고들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강화도의 대표적인 쌀 브랜드 ‘강화섬쌀’의 미질이 전국적 입니다. 유권사님, 브라질의 밤하늘에도 한국과는 반대로 생긴 달들이 늘 싱그럽습니다. 달 힘으로 물때가 달라지고 조금과 사리가 생기고 그게 자연스럽게 고기잡이 어부들의 달력이 되고 간척사업을 한 수문을 닫고 여는 시간이 되었을 것입니다. 양도와 화도 사이 가랑포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을 것입니다. 내일모래 구순이신 우리 아버지 정헌채 장로에게도 봄바람에 실려 오는 땅냄새가 암치료중인 아버지를 논으로 불러내는 힘이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