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길에서)고무신
2022/03/11 02:46 입력  |  조회수 : 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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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고무신을 아시나요? 1920년 이후에 나온 신발이니 그 시대를 지나 오늘에 이른 분들은 신어 본 경험이 있을 듯 합니다. 주로 검정색과 흰색이 대부분이고 어린이들을 위한 꽃 무늬 고무신이 고작이지요. 요즘도 고무신을 신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나 한정적입니다. 

 고무신은 재질이 고무이기에 그대로 붙여진 이름이고 이 신발의 장점이라면 흙이 묻거나 더러워지면 물로 쓱 닦아버려도 되고 비누로 닦게 되면 말끔하게 닦아져 본래의 모습을 되찾으니 실용적이고 편리한 신발입니다. 흠이 있다면 고무신 안에 물이 들어오면 발이 자꾸만 미끌어져 질뚜룩해지는 모양새로 민망하게 되는 것이지만 고무신의 등장은 짚신 이후의 새로운 신발의 혁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양, 검정 고무신을 죽 나열해 놓은 사진 밑에 ‘세계적인 패션 신발, 조선 나이키’라는 문구가 아주 인상적인 것을 블로그를 통해 본 적이 있습니다. 잊혀져 가는 퇴물에 붙여진 극찬이기도 하고 브랜드니 메이커니 하며 열광하는 무리들을 향한 비꼼 같기도 합니다.   

 “오늘, 뒤 개울에 빨래를 간 새, 영이와 윤이가 제 고무신을 들어다 엿을 바꿔 먹었어요”  어이없는 소리다. “뭐이 어쩌고 어째?” “아니 그래, 넌 빨래 갈 때 신을 벗고 가더냐?” “아니요, 집에서 신는 헌 신 말고요, 옥색 고무신이요” 명절날이나, 또는 심부름 갈 때나, 학교 운동회 때가 아니면 좀체로 신지않고 궤짝 속에 감쳐두고 ……신어서 닳기보다 닦아서 닳는 것이 더했을 골똘히도 아끼는 신……

 주인 댁 아저씨(철수)가 팔월 대목에 집에서 가정일을 도와주는 남이에게 선물한 옥색고무신을 철수의 어린 두 딸이 엿을 바꾸어 먹은 사건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남이가 자초지종을 말하는 철수와의 대화입니다. 이 글은 오영수 작가가 1949년 <남이와 엿장수>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그의 대표적 작품인데 고무신에 얽힌 얘기 때문인지 교과서에는 <고무신>으로 실려 있습니다. 귀히 여기는 고무신이 엿장수 손에 넘어갔고 그로 인해 엿장수와의 인연이 있게되나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헤어지게 되는 젊은 남녀의 순수하고 애틋한 사랑의 얘기를 평범한 일상의 소재로써 내용을 구체적이고 참신하게 표현한 작품입니다. 과거 우리 조상들은 남성이 여성에게 청혼을 할 때에 꽃신을 주기도 하고, 사랑을 고백할 때 신발을 주기도 하지만 반면에 신발을 선물하면 도망가 버린다는 속설도 있습니다. 남이의 옥색 고무신도 예외없이 엿장수와의 사랑과 이별이라는 상반된 의미를 담고 있어 절제된 사랑의 아름다움이 돋보입니다.

 대학생 시절, 교회 청년부에 소속되어 무창포 해수욕장 부근으로 수련회를 간 적이 있습니다. 바닷가를 마주보고 그 신선한 바람을 그대로 받으며 산등성이에 세워진 무창포 교회는 두 살박이 딸이 있는 젊은 목사님 내외가 개척한 교회입니다. 수련회가 끝나는 마지막 날, 회원들과 장거리에 갔습니다. 간 밤에 댓돌 위에 놓인 사모님의 고무신을 살짝 신어보았습니다. 내 발과 똑같은 십구문입니다. 

 회원들이 먹거리에 눈이 팔려 정신 없는 틈에 얼른 신발가게에 들러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샀습니다. 아이를 등에 업고 땀을 뻘뻘 흘리며 끼니를 챙겨 주시는 사모님께 드리고 싶은 마음으로 결정한 선물이 고작 고무신이었습니다. 작별을 하며 송구한 마음, 또 미안함과 쑥스러움에 눈물 조차 감추어야 했습니다. 

 신발장에 가득 쌓인 신발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구두들, 추억을 간직할만한 것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는 문명의 소산물을 그래도 아쉬워하며 한 켤레 집어듭니다. 오늘은 또 얼마나 나의 발을 피곤하게 할까! 원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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