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사람인지라 우울하고 외롭고 쓸쓸할 때가 있다. 인생의 황혼을 바라보며 삶을 돌아보니 제대로 산 것 같지 않다며 탄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내가 선택하여 사는 삶이란 있을 수도 없는데 살다보니 그냥 살아 온거라며 만족스럽지 못한 삶에 후회도 해본다. 타인으로부터 심한 상처를 받으며 가슴앓이도 해보고 쉽게 잊혀지거나 용서가 되지 않아 순간순간 화를 내기도 한다. 구구절절 상처를 받았다는 얘기 보따리를 열며 억울해 하기도 한다. 내색을 안 하려해도 하게 되는 것은 상처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
일생을 살며 한 두번-혹은 그 이상일 수도 있겠지만- 타인으로인해 상처를 받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만약에 그런 일이 없었다면 참으로 행운이다. 상처를 받은 일을 속된말로‘재수 옴 붙은 거다’라고 해버리면 좀 위로가 될까?
남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은 너그러움이 없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상대를 제압해야 한다는 못난 발상이 그 원인이 되기도 한다. 뒤집어 말하면 보듬을 수 있는 아량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똑같은 상황에서 남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같은 행위를 무의식 중에 하는 경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상처를 받았다고 여겨지면 지혜롭게 대처해서 그 상처를 얼른 치료해야 하고 조심할 것은 그 상처 받은 일로 적을 만들어선 안된다는 생각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가상의 ‘사평역’을 배경으로 쓴 임철우 씨의 소설은 막차를 기다리느라 역에 모여든 사람들의 삶의 비애와 애환을 서정적으로 그려내며 냉혹한 현실의 끝자락에서도 어디론가를 향해 발길을 옮기며 희망의 끈을 이어가려는 소외된 사람들의 고단한 이야기이다. 모두가 오랜 시간 기다림 끝에 막차에 오르지만 이름도 없는 ‘미친 여자’는 그 자리에 남는다. 갈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갈 곳을 모르기 때문으로 이해된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톱밥이 다 타 꺼져가는 낡은 난로, 남은 자가 추운 밤을 견디기엔 턱도 없이 모자랄 톱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늙은 역장의 인정이… 쉽게 이웃을 외면하는 야박한 우리네의 인심을 되돌아 보게한다. [역장은 문득 그녀가 걱정스러웠다. 올겨울 같은 혹독한 추위에 아직 얼어 죽지않고 여기까지 흘러 들어 왔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이거 참 난처한걸. 난로를 그대로 두고 갈 수도 없고……’ 결국 톱밥을 더 가져다가 난로에 부어 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왜 우린 정상적인 사람의 기발한 속임수에 속아 나라의 주권이 흔들리는 아픔을 겪어야 할까? 나만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몰랐던 소위, 고위층이라는 인간들의 행위로 이런 분노를 느껴야 할까! 얼마나 더 삭혀야 그 상처가 치유될까! 촛불을 밝힐 수 없으니 글이라도……
무슨 생각이 있긴 있는건지, 이 조차 알 수 없는 미친여자의 행동이 차라리 평화로워 보이며 정상적이지 않는 삶이 행복할 수 있다는 비논리적인 생각이 문득 든다. 톱밥이 많이 필요 할 것 같다.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아픈 이들의 상처를 따뜻이 녹여 줄 그런 톱밥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