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중 선교사(사회학박사,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경제적 기반으로서 영주권
“영주권 어떻게 됐어?”, “10년째 기다리고 있어”, “이제 발 뻗고 잘 수 있겠다”, “그래 마음 고생이 얼마나 많았어.” 미국 한인들 사이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대화입니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미국으로 건너온 이주자들에게 합법적 사회-경제생활을 할 수 있는 권리인 영주권 취득은 쉽지 않습니다. 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기 때문입니다. 정치지형에 따라 바뀌는 이민법에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고 든든한 직업이나 직장(스폰서)이 있어야 하지요. 시간과 돈, 때로는 가족과 생이별을 감수하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영주권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러나 같은 이민국가인 브라질 상황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영주권 가지고 계신가요?”라는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민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는 ‘이민국가’라고 불리는 나라들에 비해 브라질 영주권 취득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닙니다.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브라질에서 살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영주권을 딸 수 있고 갱신 할 수 있습니다. 브라질 한인들의 영주권에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알려지지 않았고 이민사회가 작은 규모였던 이민초기시절 영주권이 없어서 숨어살고 추방당하고 반목과 갈등을 겪었던 때가 있었지요. 한인들에게 영주권은 이민자들에게 없어서는 안될 삶의 조건이자 모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사회경제적 지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리와 의무로서 시민권
영주권보다 더 많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 시민권은 어떻게 주어졌을까요. 이화여대 이선주 교수의 “시민과 디아스포라 사이: 경계인들의 목소리”에 따르면 시민권이라는 말이 처음 생긴 그리스 도시국가에서 시민이 된다는 것은 통치 할 수 있는 권리이자 통치를 받을 수 있는 상태를 의미했습니다.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권리가 아니었습니다. 중세시대는 가톨릭교회와 신권이 지배했기 때문에 시민에 대한 개념의 전개나 담론의 공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십자군 전쟁이 실패하고 교황권이 약해지면서 유럽 각국이 근대국가의 문을 열게 되고 시민의 권리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합니다. 경제력을 가진 도시의 중산계급들은 국가경제의 주축으로 자리잡고 국가와 시민의 경계가 그어지기 시작합니다. 1789년 프랑스혁명은 인권과 시민의 권리를 공식화하여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나옴을 천명하지요. 이 때부터 국가와 국민의 관계는 합의에 의한 제도가 됩니다. 다시 말하면 국가는 국민을 위해 인간의 기본적인 권리를 보장하고 국민은 국가를 신뢰하고 의무를 가지게 됩니다. 이렇듯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시민권은 자유와 평등을 추구하는 인간의 권리를 실천하기 위한 치열한 과정을 거쳐서 주어진 제도입니다. 보다 보편적이고 평등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전개된 시민권의 개념은 지금도 각 나라의 상황에 따라 변하는 역동적인 사회현상 중 하나 입니다. 국제이주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빈번해지고 다양해지는 현대사회에서 국가가 이주자들에게 어떻게 시민이라는 권리를 주고 의무를 부여할 것인가, 이주자들은 시민으로서 어디까지 어떻게 국가에 대한 의무를 할 것인가라는 것은 삶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한인사회의 도전
브라질 경제가 어렵고 생활이 어려워지면서 영주권을 반납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인들이 많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시민권을 가진 한인들도 배우자를 통해서 혹은 여러 방법으로 한국여권을 취득하고 있습니다. 한인들의 영주권은 사회-경제생활의 기본조건으로서, 한인들의 시민권은 브라질 정체성의 한 부분을 구성하는 요소였습니다. 한인사회가 브라질에서 지속적으로 뿌리를 내리며 모국과 이주국에서 필요한 집단이 되기 위해서 지금과 같은 한국에 치중된 경향은 좋은 신호는 아닙니다. 한인에게 영주권과 시민권의 차이는 무엇인지, 영주권자들이 좀 더 브라질 사회와 동화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시민권자들의 한국과의 연결점을 어떻게 찾아야 할 지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