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복 목사의 복음과 삶)아 시나브로! 오 마침내!
2020/09/25 02:43 입력  |  조회수 : 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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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복 목사

 이런 말이 있다.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개구리는 반사적으로 뛰어 올라간다. 온 힘을 다해 그야말로 죽을힘을 다해 살기 위해 뛰어 올라간다. 그런데 천천히 조금씩 물의 온도를 높이면 개구리는 그 속에서 한동안 유유히 헤엄을 치며 잘 논다. 그런데 물이 점점 더워지는데 스스로 그 안에서 적응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 유유자적함은 물이 끓어오르는  비등점에 가까워질 때까지 계속된다. 그러다가 그때 위기를 감지하고 도망치려 하지만 이미 뜨거워지는 물로 인하여 움직임이 둔화되고 그 안에서 자신도 모르게 죽어간다.
 이솝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몹시 추운 어느 날 밤에 장사를 다니는 아라비아 사람이 천막을 치고 노숙을 하고 있을 때, 낙타가 슬그머니 천막 안을 들여다본다. 주인이 “무슨 일이냐? 할 말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낙타가 “주인님, 오늘밤은 대단히 춥습니다. 죄송하지만 제 머리만이라도 천막 안에 넣어주십시오.” 주인은 불쌍하기도 하고 측은하기도 해서 친절하게 승낙을 했다. 그런데 얼마 후에 낙타가 “주인님, 목도 추우니 조금 더 들어갈 수 없나요?” 이번에도 주인은 승낙을 한다. 이렇게 조금씩 조금씩 낙타에게 천막을 내어 준다. 그러다가 마침내 주인을 천막에서 내어 쫓고 낙타가 그 천막을 차지한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느끼고 아무 감각 없이 살다가 죽어가는 개구리나,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면서 조금씩 조금씩 내어주다 보니 나중에는 자기는 천막 밖으로 내어 쫒기는 신세가 된다. 이 두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내 자신과 지금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우리는 어떤가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코로나 19로 인하여 영상예배를 드렸다. 그것도 감사하면서 집에서 정성을 다하여 마음과 자세를 갖추고 예배를 드렸다. 참 재미있었고 ‘이렇게도 예배를 드릴 수 있네’ 하였다. 그런데 이것이 오랜 시간을 거쳐 오면서 지금 우리는 개구리가 되어 있고 낙타에게 천막을 빼앗긴 신세가 되어 있다. 그래서 안타깝다.
 한국과 세계 곳곳에서는 지금 정부에 의하여 예배와 교회 출입을 조종을 받고 있다. 코로나 19가 그렇게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것도 괜찮겠지 했다. 이정도면 되겠지 하고 지내 왔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까 이것은 아니다 싶다. 그래서 꿈틀거리려고 하니 꿈틀 거릴 수가 없게 되어있는 상황을 보고 느낀다. 교회도 마음대로 들어가지를 못한다. 교회당에 들어가 대면예배를 마음 놓고 드린다는 것은 옛 말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이런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기독인들의 신앙과 믿음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슬며시 들어왔던 영상예배나 교회에 안 나가고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던 것이 이제는 당연히 여겨지는 것이다. 교회 안 나가고 집에서 예배 드려도 나는 예배드리고 있는데 무슨 문제가 있느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 답답하고 교회 나가고 싶고 찬양과 기도도 마음 놓고 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이런 것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그런데도 아무 감감이 없다.
 안개비에 옷이 젖는다고 하였다. 무슨 말인가? “시나브로”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이라는 말이다. 개구리가 그렇게 되었다. 천막 주인이 그렇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이 시나브로로 인하여 우리의 신앙을 거의 다 잃어버린 상태가 아닌가? 그렇게 감동으로 예배드리던 열정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게 큰소리로 감격에 겨워 부르던 찬양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그렇게 부르짖던 기도의 삶은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렇게 된 줄도 모르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교회에 나가야 할 목적이 사라지고 만 것 같다. 왜? 왜? 교회여야 하는데?
 교회 목사들도 마찬가지이다. 교인들의 요구에 따라서 그들의 입맛에 맞는 설교를 하여야 한다고 그래야 부흥한다고 하면서 교인들을 즐겁게 해 주려고 설교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지고 말았다. 설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는 영웅들의 이야기로 물들이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로 설교 시간을 채워 나가고 있다. 코미디 같다. 어느 일반 강사의 강의와도 같다. 그런데 교인들은 그것이 좋은 설교요 재미있는 웃기는 설교라고 좋아한다. 그것에 은혜 받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목사도 죽고 성도들도 다 죽어간다. 아니 이미 죽었는데 죽어 있는 줄도 모르고 있다. 성경 신명기 8장 2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우리는 지금 이 시대가 광야와 같은 시대를 살고 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런 시간을 허락하셨을까? 마찬가지라 본다. 코로나 19의 시간을 걷게 하신 것은 우리를 낮추시며 우리를 시험하사 하나님의 명령(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알려 하신다고.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이 시간에 더욱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코로나 19를 핑계를 댄다. 이것도 코로나 19 때문에, 저것도 코로나 19 때문이라고.
그러나 코로나 19의 시간이 하나님이 시험하는 시간인 것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이겨 나가면 그 끝에는 어떻게 되는가? 하나님께서 신명기 8장 16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렇다.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려는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모르고 아니 알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잊어버리고 “시나브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죽음으로 달려가고 천막을 빼앗겨 버리고 만다.
 코로나 19는 분명 우리에게 재앙이다. 지금은 광야의 길을 걷는 것 같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다. 그래서 코로나 19의 시대는 우리에게 좋은 기회이다. 왜? 광야에서도 일하고 계신 하나님은 지금 코로나 19 속에서도 일하고 계신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계시고 시험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똑같이 우리를 보고 계시고 시험하신다. 왜? 재앙을 재앙으로 끝나게 하지 않고 마침내 우리에게 복을 주시려고 말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시나브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코로나 19시대의 어두움과 악한 영들에게 패배하지 말고 “마침내” 하나님이 준비하신 귀한 은혜와 복들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의 시험을 잘 치루어 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도하며 축복한다. 
(YouTube : 강성복목사 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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