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요즘 같은 세상에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까?”(벧전1:1-16)
2020/03/19 10:55 입력  |  조회수 : 1,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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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평 목사(서울기독대학교 총장, 한국 예수사랑교회 담임
 
요즘 우리의 삶이 정치, 경제, 사회교육의 난제로 그리고 코로나19 전염병으로 우리의 삶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이런 때 우리의 삶을 복원시킬 방법이 있습니까? 그러나 여러분이 절망적인 순간에 의지하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아침 안개처럼, 들의 풀과 꽃처럼 대단히 잠정적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이 세상의 문제를 먼저 인식하고, 그리고 극복할 수 있는 소망적 자세와 태도를 배우기를 원합니다. 우리들이 음식이 없이는 한 달 정도를 살 수 있고, 물이 없이는 10일 정도를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소가 없이는 5분 정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망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지 못합니다. 따라서 저는 오늘 설교의 본론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왜 세상에 뿌리를 두지 말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져야 하는가를 네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우리가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며, 천국의 백성이기 때문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아멘! 본문 2절 말씀 속에 우리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계속적으로 소망을 갖게 하는 두 말씀이 있습니다.
 1) 여러분은 본문의 택함을 받는다는 말이 얼마나 귀한 말인지 아십니까? 아내로, 남편으로, 자녀로, 신입사원으로, 올스타팀으로, 택함을 받으면 기쁜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하늘나라의 백성으로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2) 중요한 단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심”입니다. 이는 “성화”(Sanctification)를 의미합니다. 우리는 성령에 의해서 성화되었는데 이는 순종의 길을 걷기 위함입니다. ‘거룩하게 되다.’ 즉 ‘성화되다.’라는 말은 경건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하기 위해서 따로 잘 보관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에 보면, 성전 안에는 언제나 금 접시가 정결하게 준비되어 있는데 이 준비는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순간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에 사용되게 하기 위해서 준비된다는 것인데 이는 그 순간 우리가 구원받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이 얼마나 강하게 보이든지, 교회가 얼마나 연약하게 보이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시게 될 것입니다. 사 45:23에 “모든 무릎이 무릎을 꿇게 될 것이고, 모든 혀가 예수님을 구주됨을 고백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다. 이 세상은 오늘 같이 정치, 경제, 사회와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염되는 현상이 지속되다가 결국은 극적인 종말이 있을 것인데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 성도 모두가 우승팀의 일원으로 천국의 일부분들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가 소망을 가져야 할 이유는 우리는 거듭났고, 하늘나라에서 영생을 보장받기 때문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아멘! 3절에는 예수님께서 “영생의 산 소망”을 얻는 방법을 묻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나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니고데모는 “어떻게 어머니의 배속에 다시 들어갔다 나옵니까?“라고 반문을 하였습니다. 이 응답에 대하여 요 3:5에 우리 주님께서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는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요 3:6에 “육으로 된 것은 육으로부터 나오게 되고, 영은 영으로부터 나오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태어나는 순간에, 여러분은 아담으로부터 유전되는 죄의 본질, 즉 원죄를 갖고 태어나게 됩니다. 육체는 육체를 낳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너는 결단코 하늘나라에 대하여 소망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여러분은 거듭났습니다. 여러분이 거듭나지 않았으면 여러분은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따라서 중요한 질문은 그러면 어떻게 거듭나느냐는 것입니다. 벧전 1:23에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 14:1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라.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의 집에는 거할 곳이 많다. 내가 가서 너희가 있을 처소를 준비하겠다.”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해서 이 천국 방은, 예수께서 당신의 십자가 보혈로 예약금을 지불했으므로 우리가 밤 10시 아니면 12시에 와도 방은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의 삶이 무너져 버려도 거듭나서 영생을 소유했다는 이 산 소망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인생 여정을 계속해서 평안하게 행진하게 하는 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산 소망을 가질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모두는 하나님에 의해서 보호받고 필요 없는 고통으로부터 제외되기 때문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아멘! 본문 5절 말씀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라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의 의미는 10대 아이들이 모터 싸이클을 타고, 속도위반을 하고, 교통질서를 어기고 폭주를 하다가 추돌사고 나도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 보호받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준행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러분에게 닥쳐오는 사탄의 그 어떤 잔인한 공격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여러분을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권능으로 인해서 필요 없는 고통으로부터 즉 코로나19로부터 보호받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고 위생과 지켜야 할 수칙을 잘 지키시므로 소망의 삶을 사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우리가 소망을 갖는 이유는 “우리가 당하는 모든 고통은 목적이 있고 이 고통은 일시적이라는 것을 감사하게 됨을 생각합니다.”
 본문 6~7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에게도 고난을 당하게 하는데 거기에는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욥의 고통은 욥이 이 세상에서 가장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감동적인 표본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육체의 가시는 자신으로 하여금 약한데서 강하게 하심이라고 자신을 갖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강하게 하시려는 의도가 있으십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위로를 받게 하려는 의도가 있습니다. 또한, 우리 모두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합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하여 감사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고난은 우리들의 삶에 있어서 궁극적인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통으로 상처를 받으면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는 일시적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워렌 위어스비는 “여러분이 삶의 풀무불 속에 들어가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오른손으로 풀무의 온도를 조절하시며 왼손의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하시고 계신다.”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고통과 고난이라도 여러분이 감당하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강도와 시간을 조절하시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으로 베드로는 소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음을 생각해보겠습니다.
 벧전 1:10-12을 보면 구약의 예언자들이 네 가지를 모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메시야가 오실 것과 자기들의 죄를 위해서 돌아가실 것과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고도 마리아에게 메시야가 태어날 것이라는 소식을 전한 가브리엘 천사도 메시야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은 마지막 순간에 나타나기까지는 신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우리의 마지막 시간은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시간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고난의 순간은 우리의 영광의 순간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결하게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천국에 집을 예비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소망을 이 땅으로부터 하늘나라로 옮기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가 오늘 이 시간, 세상의 모든 소망을 우리 주님께 옮기므로 영생 복락을 준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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