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설교요약)성전에 대한 바른 이해(下)
2019/12/20 00:48 입력  |  조회수 : 1,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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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석현목사(샬롬교회).jpg
심석현 목사(샬롬교회 담임)
 
사람들은 성전이라는 건물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종교적인 의식으로 제사를 잘 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축복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대한 이방신전적인 사고방식을 깨뜨리십니다. 예수님께서 오시는 데 그분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고 말씀합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기에서 부터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고 하시면서, 성막을 통해서 그들과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교육해오셨습니다. 그럼에도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함께 계심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그들이 더욱 열심을 내었던 것은 ‘화려한 제사’와 ‘화려한 성전건물을 치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도 그러합니다. 우리의 신앙 곧 교회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으면, 외적으로 화려한 건물에 치장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실제로 서양의 기독교(가톨릭을 포함한)를 보면 교회당을 성전이라고 칭하면서 화려하게 꾸미는 데 모든 것을 다했습니다. 심지어 교회당 안을 금으로 도금하기까지 하였고, 그 어떤 건물보다 더욱 화려하게 지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이름으로 교회당을 지어 바치면 복을 받는다는 개념까지 등장하였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은 지금도 ‘성전의 회복’을 이야기합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성전의 회복은 ‘제사의 회복’과 ‘건물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성전을 헐라가 하시면서, 성전의 회복은 다른 의미라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도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말씀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건물을 중심으로 하는 것과 영적인 특별한 장소에 대한 이해를 바꾸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은 ‘건물’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온전한 믿음으로 살아가는 교회 곧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에 임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성경은 계속해서 신앙의 왜곡 혹은 무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16절).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라는 말은 꾸짖는 말입니다. 이런 것을 왜 모르느냐? 혹은 이런 것도 모르느냐? 라고 질책하는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성령이 교회당이 아니라, 교회 안에 계시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면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곳에 계시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7:48에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라고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 역시 끊임없이 하나님을 우리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곳에 모시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느 장소에 모시기만 하면 내 삶이 복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욱 교회당을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으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성경은 분명히 ‘성전’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어디인가를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만든 건물에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 가운데 거하십니다.
 3. 그러면, 이제 성전된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17절).
 유대 백성들은 끊임없이 성전을 중심으로 살았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성전을 중심으로 섬겼던 사두개인들과 끊임없이 마찰하셨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사두개인들의 관심이 단순히 자신들이 도둑질을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였다고만 우리가 말한다면 굉장히 단편적으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두개인들이 그랬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들과 갈등하셨던 가장 큰 이유는 성전에 대한 이해에서 달랐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들에게 성전은 항상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곳에 이방인들이나 여자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과 같이 선택받은 사람만이 들어오고, 심지어 그들도 자신을 정결케 하는 정결예식을 하고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곳이 ‘거룩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레위기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있습니다. 레위기에서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러 가기 위해서는 죄를 제거하고 오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죄를 제거하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는 씻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대로 지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왔습니다. 성전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곳에 나가기 위해서 율법대로 정결예식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성전에 대한 이해, 정결예식에 대한 오해를 올바르게 세우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다보니 끊임없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논쟁을 하셨던 것입니다. 성전을 거룩하게 하고, 자신이 그곳에 가 있으면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에 친구 중에 기도를 열심히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혼자서 밤에 기도를 하는데, 사탄이 나타나더랍니다. 그래서 강대상까지 올라갔는데, 거기까지 오더랍니다. 그래서 강대상 안으로 들어갔더니 거기는 사탄이 오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 친구는 참 신앙이 유별나다’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습니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이런 생각을 갖습니다. 제가 브라질에 처음 도착해서 ‘강단에 올라가는데, 구두를 신고 올라가면 안된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모세가 신을 벗었다’... 별 이야기들을 다 하더군요. 그래서 왜? 그러냐? 고 했더니, 그곳은 ‘거룩한 곳’이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참 재미난 것이 있더라고요. 구두는 벗고서 다시 슬리퍼를 신는 것입니다. 구두와 슬리퍼 중에 어떤 것이 좀 더 격식이 있는 것인가요?.... 어느 날 보니까 강대상 위에 무엇을 가지러 가거나 전등을 교체하거나 그럴 때는 그냥 운동화고 구두고 막 신고 올라가더라고요.
오늘 우리 교인들이 생각과 행동이 이러한 것에 여전히 머물러 있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혹은 성도들을 거룩이라는 것으로 경고하고, 책잡기 위해서 이상한 논리를 갖고서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아전인수격이라고 할라나요? 성경을 자신의 입맛에 맞추어서 해석하고 들이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거룩한 것입니까? 가톨릭에서는 신부가 그곳에 성수를 붓거나 기도해주는 곳이면 ‘거룩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그들은 ‘성물’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우리 교회들도 ‘성물’이라는 표현들을 참 많이 사용합니다. 성물이면 여러분들이 함부로 손대면 죽습니다. 그런데 자기 필요에 따라서 사용하고 만지면서, 꼭 누군가를 공격하려고 하면 ‘성물’이라고 말을 합니다.
‘거룩’은 사람이 만든 것에 거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성수를 뿌리고 안수를 했다고 해서 거룩하게 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17절은 구약성경의 개념을 통해서 성전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말씀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계신 곳을 침범하면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이제 어디에 계십니까? 성령께서 어디에 계십니까?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성령께서 거하시는 여러분이 곧 ‘성전’입니다. 그러기에 성전된 우리의 말과 행동, 삶이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씀합니다.
그래서 17절에서는 성전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면 하나님을 침범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III.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외적인 것에 치우치지 말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신앙이, 우리의 거룩이 건물이나 물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구별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고, 성령께서 인도하심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것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여러분 안에 성령께서 내주하셔서 성전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전된 삶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삶입니다. 성령께서 여러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시고, 인도하시며, 위로와 평안을 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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