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자

 

이 아름다운 계절에도 암울한 소식들은 멈출 줄을 모른다. 족한 줄을 모르는 아귀들의 발악이 날로 포악해지고 어둠의 세력은 겁도 없이 종횡무진 활약하는가 보다. 한 젊은 한인 청년의 안타까운 주검이 몇 날이고 가슴을 짓누른다. 잔혹한 일을 당하며 얼마나 무섭고 놀랐을까? 남은 자들은 그 모진 슬픔을 어떻게 다 감당하며 눈물 강을 건너갈지 먹먹하다.

 오래전 누군가는 절규하는 나의 귓전에“저것은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짐승이다!”라며, 주저앉은 나를 달랬었다. 범인을 검거한 전담 형사가 한 말이다. 주님의 형상이 회복되지 않은 인간이기에 극악무도한 만행을 저지른다는 것이다. “짐승들이 날뛰는 사회!” 생명의 존엄성도 지켜지지 않는 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살얼음을 걷는 듯한 일이다.

 참으로 통탄할 세상 풍조다. 누구도 내일을 장담하고 자유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낙망하지 말고 주님의 깊은 곳으로 나갈 일이다. 소설 같은 이야기가 남의 일이 아니라 실체가 되어 나를 찾아온 날이 있었다, 거부할 수 없이 끌려 들어가는 수렁은 참담하고 냉혹하다. 아무도 동행할 수 없고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고달픈 광야 길을 걷게 된다.

 절대 아물지 않을 것 같은 상처를 안고 몸부림칠 기력도 없는 잔인한 시간이다. 고독에 자맥질하며 하룻길 또 하룻길을 걸었지만, 날마다 더 깊은 늪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였다.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나를 지탱하려고 기진하도록 씨름을 하였다. 영영 헤어날 수 없을 것 같은 절망의 나락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하도록 까지 하루하루가 치열했다.

 영혼을 들어 바라본 하늘 언덕으로 햇살처럼 다가온 따스한 손길을 잡는 날, 은혜의 강 나루턱에 매어 놓은 찬란한 빛 가득한 거룻배가 보였다. 복락의 강으로 이끌어 갈 새로운 장을 은밀히 열어 놓으신 것이다. 지루한 광야 끝자락에서 비로소 나의 우주宇宙를 발견하였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는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는 장엄하고 놀라웠다.

 촛농처럼 녹아 내리는 설움을 안고 그리다가 부르다가 스러지던 날들을 통하여 척박한 심령을 시나브로 기경하신 것이다. 내 눈이 보지 못하고 내 귀가 듣지 못함을 알지 못한 체, 얼마나 야속하다 원망을 하였던가! 그러나 언약의 문으로 들어서고 보니 모든 것이 확연 해졌다. 주께서 내 짐을 대신 지고 가시밭 길을 걸으시며 내 모든“수치의 옷”을 벗겨 주셨다.

 하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광야는, 당신의 기름진 포도원, 물 덴 동산으로 이끄시는 과정이었다. 전능자의 산 울이 둘러있고 친히 망대가 되신 곳으로 말이다. 그곳에서 눈동자 같은 보호 하심을 받으며 영원에 잇대어 살게 하시려는 놀라운 은혜였다. 그렇다, 무슨 일을 만나도“죽지 않으면 된다!” 영혼이 주의 영으로 살아 있으면 “영화로운 주님의 날”을 맞이하게 된다. 

 미물도 이 비밀은 아는지“크리스마스의 별” 또는 “왕관”이란 이름을 가진 식물이 오늘 주먹만 한 머리를 불쑥 내밀었다. 오로지 성탄 축하를 위하여 꽃을 피우는 것이 살아가는 이유인가 보다. 지난 11 개월 동안 죽은 듯이 땅속에서 움츠리고 있었다. 지루한 적막 속에서 거룩하고 복된 날에 찬란한 왕관을 주님께 올려 드릴 준비를 하였나 보다.

 풀꽃도 시절을 알아 오롯한 정성을 모아 제 본분을 다하는 듯하여 경이롭다! 주님으로 늘 목이 마르고, 주님으로 밖에 살 수 없는 나는, 무엇으로 나의 왕을 영화롭게 할 수 있을까? 부끄러운 속내를 들여 다 보기라도 하는 듯 동박새 노랫소리가 애처롭게 귓전을 울리고, 빈손으로 가난한 심중의 눈길을 따라 저들 밖으로 마중을 나선다.

 빈방도 없는 심사를 조아리며 한 걸음 반걸음 내딛는 자국마다, 허공을 맴돌던 숱한 간구들이 중언부언 순백의 눈밭을 더럽힐까 두렵다. 부질없이 토해냈던 조각난 언어들이 사금파리처럼 가슴을 찌르고, 지키지 못한 기도 약속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늘어진 마음 자락을 다잡으며 앓는 어찌할 수 없는 병이다.

 다함이 없는 사랑과 인자가 아니었으면 숨을 곳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베푸시는 자비에 의지하여 홀로 우는 자들을 품고 임께로 간다. 설몽雪夢의 숲에는 시끄러운 세상을 등진 동백이 먼저 그리움 찬 가슴을 열고 길목을 지킬 것이다. 모진 칼바람도 연연해하지 않고 정한에 타오르던 붉은 연서를 분분히 뿌리면, 이름 없는 풀꽃도 차오르는 임의 숨결로 봄을 잉태하리라! 할렐루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