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추운 겨울 아직도 어두운 음산한 새벽, 안개 속으로 승합 마차가 출발을 준비합니다. 전쟁에서 패한 프랑스 북부 도시 루앙의 시민들이 탈출을 합니다. 그들은 영향력 있는 점령군 장교들과의 친분을 이용해서 사령관으로부터 여행 허가증을 얻어낸 사람들이었습니다. 나름대로 유력한 그들이 대절한 대형 마차 한 대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 승합 마차 안에는 총 10명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간략하게 정리하면 그 지역의 명문 귀족 내외, 방직공장을 여러 개 소유한 지방의회 의원 내외, 그리고 포도주 도매상 부부, 두 명의 수녀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으로 무위도식하며 정계 진출의 기회를 엿보던 공화주의자 한 명, 또 ‘비계 덩어리’라고 불리는 매춘부가 타고 있었습니다.

 어수선한 전시상황에 그들은 사회적 신분차이나 정치적 입장차이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모두 지긋지긋한 전쟁의 기운을 피해서 피난 가는 동료로 서로를 수용해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러나 그 좁은 승합 마차 안에서도, 피난 상황에도 천한 여인 ‘비계 덩어리’와 함께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묘한 긴장감이 마차 안에 가득했습니다.

 추운 겨울날 짙은 안개와 눈발 때문에 예정된 시간에 중간기착지에 이를 수 없게 됩니다. 마차 승객들은 초조와 불안에 시달립니다. 전쟁통에 아무런 준비 없이 길을 나선 이들에게 추위와 허기는 한층 더 고통스러웠습니다. 모든 승객들이 허기를 느끼고 있을 때 ‘비계 덩어리’가 바구니를 열고 준비해온 포도주와 고기를 꺼내 식사를 하면서 이웃 승객들에게 음식을 권합니다. 음식 앞에서 마차 안의 분위기는 갑자기 새롭게 됩니다. 그 누구도 말을 걸려고 하지 않았던 `천한 여인 ‘비계 덩어리’에게 상스럽기로 이름난 포도주 도매상 ‘루아조’는 아양을 떨기 시작합니다.

 ‘비계 덩어리’가 자신의 음식을 아낌없이 나눠주자 모두 허겁지겁 먹습니다. 서로 섞일 수 없었던 마차 승객들은 음식 앞에서 하나가 됩니다. 그들이 멸시하던 비계 덩어리가 준비한 음식 앞에 그들은 지나칠 정도로 비굴해 집니다. 고상한 척 하던 사람들도 배고픔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마침내 마차는 중간기착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들은 안도합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마차가 출발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비계 덩어리’와 잠자리를 원하는 프러시아 장교가 이들의 출발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고상하고 선량한 프랑스 시민들인 그들은 적군 장교의 파렴치한 요구에 분노합니다. 그들의 동료가 된 여인이 거절하는 용기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곧 대대적인 교전이 있으리란 소문에 불안감이 팽배해지면서 상황은 돌변합니다. 적군 장교의 요구를 야만적이라 비난하던 마차의 승객들은 매춘부인 ‘비계 덩어리’가 몸을 허락하기를 바랍니다. 멋진 몸매를 지닌 프러시아 장교가 적군인 것이 유감이라는 귀부인의 다소 외설적인 발언을 필두로 한 목소리로 희생의 미덕을 이야기합니다. 당사자 ‘비계 덩어리’의 저항이 완강해지자 모든 마차 승객들은 매춘부가 자신의 신분을 잊고 상대할 남자를 가린다고 비난을 퍼붓습니다. 심지어 수녀들도 ‘하나님은 순수한 목적에서 행한 죄악은 용서하신다’라고 설득합니다. 자신들의 안전 문제에서는 종교인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설득과 눈총에 떠밀린 ‘비계 덩어리’는 급기야 프러시아 장교를 찾아갑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집단의 요청으로, 집단을 위하여 자신의 몸을 프러시아 장교에게 허락합니다. 프러시아 장교는 자신의 요구가 충족되자 출발을 허락합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 마차는 출발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며 출발을 반깁니다.

 그러나 수치심에 떨며 고개를 숙이고 있는 희생양 ‘비계 덩어리’를 향한 그들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자신들의 설득에 굴복하여 자신들을 위해서 몸을 던진 ‘비계 덩어리’를 불결한 존재로 취급합니다. 정말 비계 덩어리 취급을 하면서 접촉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드디어 음식을 나누어 먹습니다. 그런데 좁은 마차 안에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누구도 ‘비계 덩어리’에게 음식을 권하지 않습니다. 모두 무언의 비난으로 이 여인을 정죄합니다.

 ‘비계 덩어리’는 수녀들에게 음욕의 화신이 되었고, 귀부인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여성이 되어 버렸고, 조국을 사랑하는 공화주의자에게는 적군의 위안부가 되어 버렸습니다. 천하에 몹쓸 짓을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급기야 ‘비계 덩어리’는 허기와 수치 그리고 분노와 배신감의 눈물을 흘립니다. 이상은 프랑스 작가 기드 모파상(Guy De Maupassant)의 대표적 중편소설 “비계 덩어리” 줄거리입니다.

 모파상은 에드거 앨런 포, 안톤 체호프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꼽힙니다. 모파상의 부모는 계속되는 불화로 인해 1860년 헤어졌고, 모파상은 어머니, 동생과 함께 노르망디의 에트르타에서 성장합니다. 어머니의 오빠가 당대 최고의 작가 중에 하나였던 플로베르와 친분이 있어서 모파상은 자연스럽게 플로베르와 교분을 쌓으며 문학 수업을 했습니다. 모파상이 루앙에 있는 고등학교 재학 중에는 플로베르의 집을 방문하며 가르침을 받습니다. 이때 당대 최고의 작가들인 에밀 졸라, 카를 위스망스, 알퐁스 도데 등 위대한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학 수업을 했습니다.

 1880년에 모파상이 발표한 소설 ‘비계 덩어리’는 당시 프랑스 사회를 흔들어 놓을 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작품입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무명의 작가 모파상을 일약 프랑스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세운 작품입니다. 모파상은 소설 ‘비계 덩어리’로 프랑스 사회 지도층의 도덕심, 이기심 그리고 이중성을 고발합니다. 소설 ‘비계 덩어리’는 모순으로 가득했던 당시 프랑스 사회를 통쾌하게 조롱합니다.

 모파상은 ‘비계 덩어리’라는 소설로 당시 사회 기득층의 모순적 이기심과 천박한 이중성을 적나라하게 고발합니다. 음식과 자신들의 안전 앞에 한없이 비굴했던 지도층과 종교인들이 자신들이 설득해서, 자신들을 위해 행한 행위를 정죄하고 멸시합니다. 이는 집단의 이기심과 맹목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판단과 생각에 따라 동일한 행위가 때로는 칭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이런 비극이 오늘도 반복된다는 것이 진정한 비극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