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애국 신앙을 갖자(느1:1-1)
2019/07/25 21:23 입력  |  조회수 :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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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조국을 떠나 머나먼 브라질 땅에 이민자로 살지만 메스컴을 통해 조국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듣습니다. 오늘의 우리 조국은 정치, 경제, 교육, 외교, 안보 등 전반적인 분야에 걸쳐 위기 상황이라고 합니다.
 본문을 보면, 느헤미야가 등장합니다. 그는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애국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가 살던 시대는 B.C. 5세기였는데, 그 역사적 배경은 일찍이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남북 분단 시대가 있었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과 남 유다 왕국입니다. 먼저 북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범죄 하다가 앗수르에 의해 B.C. 722년 멸망합니다. 남 유다도 그 전철을 밟다가 B.C. 586년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갑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 전에 이미 두 차례나 침략을 당하고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끌려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벨론 포로는 3차에 걸쳐 이뤄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1차는 B.C. 606년, 2차는 B.C. 597년, 그리고 3차는 B.C. 586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함으로 바벨론 포로가 되게 하셨지만, 70년 후 본토로 다시 귀환하게 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정말 그 약속대로 포로귀환이 이뤄집니다. 포로귀환도 3차에 걸쳐 진행됩니다. 바벨론 포로 이후 바벨론 제국 역시 멸망하고 메대바사 제국이 그 땅을 차지합니다.
 얼마 후에는 바사(페르시아)가 대제국을 형성합니다. 바사의 고레스 왕이 즉위하면서 포로민의 귀환이 단행됩니다. 바사는 바벨론과 달리 유화적인 정책을 썼는데, 식민지 백성들의 문화와 종교를 존중하고, 포로로 끌려온 자들에게 귀환을 허락한 것입니다. 이게 바로 고레스 왕이 단행한 이스라엘의 1차 포로귀환인데 B.C. 537년에 있었습니다. 1차 포로가 있었던 B.C. 606년으로부터 70년이 되는 해로 하나님의 약속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2차 포로귀환은 B.C. 458년, 3차 포로귀환은 B.C. 444년에 이뤄집니다. 3차 귀환의 인솔자가 바로 느헤미야였습니다. 본문 느헤미야 1장은 3차 포로 귀환 직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절. “하가랴의 아들 느헤미야의 말이라 아닥사스다 왕 제이십년 기슬르월에 내가 수산 궁에 있는데” 그 연대는 대략 B.C. 445년 11월~12월경입니다. 느헤미야는 그때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수도 수산 궁에 있었습니다. 아마 고위 관리로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한시도 조국 이스라엘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본문을 보면 애국자로서의 면모가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1. 조국을 향한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이미 2차 포로 귀환이 이뤄졌지만 느헤미야는 아직 귀환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왕의 총애를 받아 붙들려 있었던 게 아닌가 짐작됩니다. 그런데 2차 포로귀환 때 유다 본토에 돌아갔던 동생 하나니가 다시 돌아와 현지의 소식을 전해 줍니다. 2절~3절. “내 형제들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두어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내게 이르렀기로 내가 그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의 형편을 물은즉 그들이 내게 이르되 사로잡힘을 면하고 남아 있는 자들이 그 지방 거기에서 큰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받으며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탔다 하는지라”
 그렇지 않아도 조국의 현실을 익히 알고 있었지만 최근의 생생한 현장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는 기가 막혔습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였습니까? 4절(상). “내가 이 말을 듣고 앉아서 울고 수일 동안 슬퍼하며 … ” 그는 털썩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리고 몇 날 며칠을 슬피 울었습니다. 애국은 조국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그래서 그런 말이 있죠. “사랑의 반대말은 증오가 아니라 무관심이다” 느헤미야는 개인적으로 잘 먹고 잘 살았습니다.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국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염려하고 있었습니다. 앉으나 서나 조국 이스라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다 조국의 아픈 현실에 대해 듣고 눈물을 흘렸던 것입니다.
 2. 조국을 위한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조국의 아픈 현실을 보고 눈물만 흘린 게 아닙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평소에도 기도했겠지만, 더 구체적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습니다. 그가 비참한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현지의 상황을 어떻게 하면 해결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기도한 것입니다. 1절 보면, 그가 동생 하나니로부터 소식은 들은 게 기슬르 월이라고 했죠. 11월~12월경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 2장을 보면 기도의 응답으로 아닥사스다 왕에게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재가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는 나산 월로 3월~4월경입니다. 그러니까 넉 달을 꼬박 기도한 것입니다. 4절(하). “ … 하늘의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하여” 금식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금식을 밥 먹듯이 한 겁니다. 느헤미야는 여호와 하나님이 역사는 주관하시는 전지전능자이심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시면 조국 이스라엘이 회복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먼저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6절~7절. “이제 종이 주의 종들인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주야로 기도하오며 우리 이스라엘 자손이 주께 범죄한 죄들을 자복하오니 주는 귀를 기울이시며 눈을 여시사 종의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 주를 향하여 크게 악을 행하여 주께서 주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신 계명과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였나이다” 그는 유다 백성이 멸망하고 이방 땅에 포로로 끌려간 것이 죄의 결과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민족의 죄를 낱낱이 아뢰며 회개합니다. 놀라운 것은 민족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기고 기도한 것입니다.
 3. 조국을 위해 헌신을 각오해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고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회가 왔습니다. 왕 앞에서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이자 왕이 무슨 걱정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기회다 싶어 조국 이스라엘의 참상을 이야기하면서 이스라엘에 귀환해서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그리고 재가를 얻어냅니다. 그는 이스라엘로 돌아가 별의 별 시련이 많았지만 마침내 성벽을 재건합니다. 그리고 에스라로 하여금 신앙 부흥 운동을 일으키게 함을 이스라엘의 회복을 도모합니다. 느헤미야는 개인적으로 부귀영화를 누리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는 수산 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1절을 보면, 그는 왕의 술 관원이었습니다. 왕에게 술을 따라 바치는 직책인데 고위직입니다. 왕의 술잔에 독이 있나 검사하는 사람이므로 왕이 가장 신임하는 측근 인사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국사도 함께 의논하는, 이를테면 오늘날 청와대 비서실장이나 수석 비서관에 해당되는 직책입니다. 아마 권세도 대단하고 재물도 있고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는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조국의 재건을 위해 포로들과 함께 3차 귀환을 감행합니다.
 결론
 우리나라도 이런 애국자들을 통해 역사를 이어 왔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학살기념관 야드 바솀(Yad Vashem)에 기록되어 있는 경구를 함께 음미해 봅니다.
 야드 바솀은 기억 혹은 기념이란 뜻입니다. 나치 독일에 6백만 명이 학살당한 슬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붙인 이름입니다. 그 기념관 출구에 이런 경구가 적혀 있습니다.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라. 망각은 또 다른 방황으로 가는 길이다.” 만일 과거의 뼈아픈 역사를 망각하고 자행자지하면 또 다시 그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는 경구입니다.
 우리는 이민자들로 브라질에 살지만 조국의 안타까운 소식을 보고 듣지만 말고 느헤미아처럼 애국 신앙으로 무장하고 뼈아픈 조국의 과거 역사를 되새기며 항상 조국을 생각하고, 조국을 위해서 기도하고, 내가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작은 일이라도 찾아 최선을 다함으로 조국의 위기가 전능자 하나님을 통해서 해결되는 역사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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