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
오스카 와일드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 가장 성공한 극작가로 뽑히는 인물입니다. 그는 문학계의 다양한 분야에 두각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는 극작가요, 시인이요, 소설가요 동화 작가입니다. 그는 살아서 인정을 받은 작가입니다. 그의 생애 마지막을 감옥에서 보내게 한 그의 윤리적 탈선과 기행이 아니었다면 그의 삶과 작품을 훨씬 더 인정받았을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그야말로 두루 두루 갖춘 사람입니다. 가문도 좋았고 교육도 잘 받았고 재능도 뛰어났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당대의 엄친아였습니다. 그의 아버지, 윌리엄 와일드 경은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안과와 비과, 외과의사이며, 고고학과 민속에 대한 책을 쓸 만큼 민족학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습니다. 또한 윌리엄 와일드 경은 박애주의자로, 트리니티 칼리지 뒤에 위치한, 링컨 플레이스 내, 도시 빈민을 위한 무료 진료소로 유명하였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할머니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는 성공적인 작가이며, “스페란차”로 유명한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오스카 와일드의 어머니는 당대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시인이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성공한 작가였고 의식있는 아일랜드 민족주의자였습니다. 토요일마다 정기적인 오후 살롱을 열었으며, 그 초대객에는 세리던 르 파누, 사무엘 레버, 조지 페트리, 아이삭 버트, 사무엘 퍼거슨 등 당대의 걸출한 작가들이었습니다. 이런 활동은 오스카 와일드의 어머니가 당시 사회에서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9살때까지 집에서 어머니의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후 오스카 와일드는 포토라 왕립 학교에 1864년에서 1871년까지 재학하였으며, 포르타 왕립학교를 졸업한 후 1871년부터 1874년까지 더블린의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고전 문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그 후 1874년부터 1878년까지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서 수학했습니다. 그의 대학시절은 문학의 기초를 다지는 중요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학창시절에 다른 과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나 고전학에서는 발군의 성적을 나타냈다고 합니다. 그는 문학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882년에 미국으로 강연여행을 떠나 희곡을 씁니다. 관심을 받아 오스카 와일드 자신의 작품이 뉴욕에서 상연되기도 했었으나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후 몇 가지 소설이나 시를 쓰고 또는 비극도 썼으나 별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와일드는 극작을 통해서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발휘합니다.
오스카 와일드는 희곡 작가로 세간의 주목을 받은 다음에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를 세계적인 작가로 세운 것은 소설입니다. 그가 쓴 장편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이나 그가 남긴 단편들은 인구(人口)에 회자(膾炙)되는 걸출한 작품들이 많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행복한 왕자”는 전 시대를 통해서 사랑받는 수작입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남긴 많은 작품들 중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끄는 작품이 “지옥의 단편”이라는 작품입니다. 그의 특유의 기지와 유머가 담긴 작품입니다만 묵직한 교훈이 담긴 작품입니다.
지옥의 단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수님이 길을 가시다가 알코올 중독자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았습니다. ‘내가 당신을 어디서 본 일이 없습니까?’ 그분이 대답합니다. ‘아, 있었지요. 나는 본래 절름발이였는데 당신이 고쳐주셔서 제가 이렇게 걷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절름발이였을 때에는 이렇게 저렇게 얻어먹고 살았는데 건강해지고 나니 할 일이 없어요. 또 누가 나를 환영하지도 않고요. 그래서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이렇게 알코올중독자가 되었습니다.’
또 한사람을 만났는데 이 사람은 창녀였습니다. ‘아니 네가 창녀일 때 용서하고 구원했는데 아직도 창녀로 사느냐?’고 꾸중하듯이 물었더니, 이 창녀가 대답하는 말이 ‘물론이지요. 제가 당신으로부터 구원받고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의 딸이 되고 감사해서 창녀생활을 청산했었지요. 그런데 아무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고 갈 데도 없고 할 일도 없고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워서 살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힘들지만 다시 옛날 직업으로 돌아와서 삽니다.’ 그래서 또 다시 창녀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또 한 곳에 가다가 예수님이 만난 사람은 아주 혈기 많고 주먹질만 하는 조폭 하나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가만히 보니 옛날에 본 사람이었습니다. ‘자네는 어떻게 하다가 폭력이 되었나?’, ‘예수님, 죄송하지만 저는 원래 시각장애자였는데 예수님께서 저의 눈을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래서 감격하고 감사했습니다만 눈감았을 때는 몰랐는데 눈뜨고 보니까 아니꼬운 사람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더럽고 치사하고 모순되고 부조리하고 부정부패 사치와 타락, 여기에 울분이 터져서 주먹을 쓰다 보니 조폭이 되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나름대로의 신앙적 통찰력을 가지고 성경을 묵상하며 쓴 작품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라고 자신들을 내세우는 사람들 중에 은혜에 걸맞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은 개인의 삶에서 내면화 되지 않으면 오히려 무서운 칼날이 되어서 은혜 입은 자를 찌르고 그 삶을 파괴하는 것임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주님의 은혜를 입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은혜를 기억하고 감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 은혜를 망각하고 그 은혜를 부정하며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인정하고 은혜를 감사하며 사는 사람들은 천국의 기쁨과 행복을 누립니다. 반면에 감사가 없는 마음이 지옥입니다.
은혜를 받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은혜를 누리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행복과 천국의 진입로라면 불평은 불행의 지름길이요 지옥의 입구입니다. 기사와 이적을 체험하여 큰 주목과 관심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감사를 고백하는 삶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