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체험적인 신앙인(마17:1-8)
2019/06/27 21:40 입력  |  조회수 :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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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담임)
 
영적 체험이 있는 신앙인과 이론적인 신앙인의 차이는 너무나 큽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의 교회 현실은 신앙생활을 오래한 사람일수록 영적 체험이 수없이 많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철저한 논리와 이론만을 내세우면서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처럼 변해 가는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어느 부흥사의 간증에 교회에 강단에 서 보면 모인 성도들의 얼굴만 보고도 신앙 연조를 알 수 있다고 합니다. 신앙 연조가 짧은 사람일수록 은혜도 갈망하고, 기쁨도, 감격도 있고 헌신도 있는데 신앙 연조가 긴 사람일수록 아멘도 잘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어둡고 기쁨과 감동도 없기에 교회 봉사도 의무에 매여 형식 적으로 하는 자들이 많음을 직시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동감이 되었습니다. 인삼이나 산삼은 해가 거듭될수록 가격이 올라가는데 어찌하여 오늘의 성도들은 해가 거듭할수록 바래새적인 신앙인들로 변해갈까? 하는 의문을 갖아 봅니다. 우리는 믿음 생활을 하면서 크고 작은 영적 체험을 많이 하게 됩니다. 중병에서 치유의 은혜를 입기도 하고 악한 귀신의 세력이 쫓겨 가기도 합니다. 어려운 문제를 만나 기도하였는데 기적처럼 기도한대로 이루어져 문제가 해결되기도 합니다. 그 외에도 신비한 은사를 받거나 놀라운 영적 체험을 하기도 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우리 자신이나 가정이 놀랍게 변화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여러 형태의 체험을 우리들에게 허락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를 믿으면서 경험하는 영적 체험을 우리는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영적 체험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  
 예수께서 어느 날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야고보 이 세 사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런데 이 산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오늘 읽은 말씀 2절에 보면 예수께서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사람이 되셔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그 안에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을 감추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늘 지내면서도 그분을 자기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간으로 느낄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변화 산에서 예수님은 자신 안에 있는 신적인 영광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셔서 얼굴이 해같이 빛나고 입고 있는 옷이 빛과 같이 희게 되어 밝게 빛나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너무 놀랐습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두려움에 떨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얼굴에서 빛나고 입고 계신 옷까지 영광의 빛으로 변한 예수님을 보고는 지금까지 이분은 훌륭한 랍비 정도로 단순하게 생각했던 것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이 황홀경을 보며 “주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만일 주께서 원하시면 내가 여기서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님을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리이다(마 17:4)”  이 산에 집을 짓고 계속 머물자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베드로의 요청과 달리 산에서 곧바로 제자들을 이끌고 일상이 반복되는 세상으로 내려오십니다.
 어쩌면 우리들도 베드로처럼 신비한 영적 체험이 지속되는 자리에 계속 머물고 싶어할 것입니다. 그렇지만 주님은 영적 체험의 순간은 짧게 허락하시고 냉엄한 현실이 기다리는 일상으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 속에서 경험하는 영적 체험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요
 1. 믿음을 굳게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영적 체험은 믿음 생활에 매우 큰 자산입니다. 베드로는 사실 이 사건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했습니다. 훗날 베드로 후서를 기록하면서 이 사건이 자기 생애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체험이었음을 고백합니다.(벧후1장)  그 체험을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더 큰 확신을 갖게 되었고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 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 당신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을까요? 제자들에게 더 큰 확신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광스런 체험을 통해 예수님이 단지 훌륭한 선생님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영광을 직접 보게 되므로 예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심을 알게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우리들로 하여금 연약한 믿음을 굳건하게 다지도록 놀라운 영적 체험을 허락하십니다. 의심 많은 우리들로 하여금 확신을 갖고 주님을 따르도록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지금도 살아 계신 하나님이심을 영적 체험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무수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통하여 엄청난 초자연적이고 영적인 체험을 하고서도 돌아서서 불신앙에 빠지는 모습들을 봅니다. 홍해바다를 건너는 엄청난 사건을 체험한 이스라엘백성들은 그 감격과 기쁨이 3일밖에 가지 못했습니다.(출15장 22-24절) 맹자의 말에 의해 유래된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이 성경에도 많이 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많이 있음을 기억하고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을 굳게 붙잡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2. 앞으로 다가올 고난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이제 얼마 후면 맞이하게 될 십자가 고난은 제자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에 동참할 제자들에게 무언가 도움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큰 고난 앞에서도 절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무장시킬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변화 산 사건을 맛보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나면 고난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무한한 영광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웬만한 고난이 덤벼들어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경험하면 지상에서 겪는 고통이 아무리 크다 해도 견딜 수 있는 힘이 솟아나며 순교까지도 기쁨으로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데반이 순교하기 직전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3. 온전히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영광스런 변화의 현장에 모세와 엘리야가 함께 있었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합니다. 그런데 그들 앞에서 예수님만이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이 얼마나 장엄한 장면입니까? 이때 베드로는 자기가 세분을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했습니다. 그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세 제자들에게 들리는 음성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부터는 체험에만 집착하지 말고 앞으로 계속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말씀을 들은 것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면 너나 할 것 없이 주의 크신 은혜라고 고백할 것입니다. 그러나 너무 어려운 불경기에 시달리는 이민교회 성도들 가운데에는 지난날 주께서 배풀어 주신 그 큰 은혜의 체험들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불신앙에 빠져 원망과 불평으로 하루하루를 힘들게 지내며 작은 고난 앞에서도 좌절하고 낙심하고 쏟아지는 세상 정보 앞에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을 의심하며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고 있는 분들은 안계신지? 영광스런 천국 소망을 가지고 장차 받을 영광만을 바라보며 사는지? 우리의 삶을 뒤돌아보며 이제는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내 몫에 십자가를 지고 아무리 큰 환난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할지라도 믿음 안에서 진정한 자유인으로 당당하게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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