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초 이야기)누림의 은총
2019/06/06 22:24 입력  |  조회수 :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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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자
 
사방으로 널찍한 베란다를 안고 있는 빨간 벽돌집에서 세 아이의 꿈이 자랐다. 아래위층으로 뛰어다니며 자지러지던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팝콘을 한 바가지씩 안고 영화감상을 하던 모습들도 빛바랜 사진처럼 아스라해져 간다. 영원할 것 같았던 소중한 시간이 하룻밤 꿈길처럼 흘러가 버리고 이생도 세월과 함께 뉘엿뉘엿 저물어간다.

 능선을 향하여 정신없이 달리던 사람에게 우선 멈춤을 하게 한 것은 교회 앞마당의 풀꽃이다. 새벽예배를 마친 성도들이 모두 돌아가고 없는 빈 마당 한 편에서 내 설움 같은 이슬을 머금고 문득 나를 불러 세웠다. 무성한 잡초들 틈바구니에 숨어 핀 여린 이파리의 들레지 않는 겸손이, 큰 울림으로 다가와 감출 수 없는 내 부끄러움을 하나씩 들추어내었다.

 미명을 부추기며 새벽 재단으로 나아가 주님을 찾고 부르며 사랑을 고백하지만, 여전히 세상 누더기를 걸친 초라한 내 모습을 얼 비춘다. 얼마나 간절한 목마름으로 주님만을 기다리면 자비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은총을 덧입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될 수 있을까? 얼마나 작아지고 낮아지면 내 사모하는 주님의 눈동자에 머무는 꽃으로 필수 있을지 맘을 조아리게 하였다.

 그날부터 서툰 손짓으로 교회 화단에 꽃나무들을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돌아보는 이 없어 홀로 웃자란 가지들을 다듬고 상한 뿌리들을 싸매는 동안, 조각난 내 심령을 어루만지는 주님의 손길이 느껴졌다. 초롱꽃이 피는 아침, 이 꽃술 저 꽃술을 날아다니는 작은 벌새가 펼치는 춤사위, 긴 어둠을 뚫고 올라온 새싹들의 향연은 생명의 주를 찬양하는 찬연한 축제였다.

 이 은밀한 새벽 밀회는 태곳적 신비가 풀어지고, 지친 내 영혼을 소생케 하는 은혜의 강으로 이끄시는 주님의 손길이고 선물이었다. 생명의 신비로움을 알려 주려는 듯 부러진 가지들이 뿌리를 내리고 작은 화분에서도 앙증맞은 꽃들이 피었다. 녹슬지 않는 생명이 부르는 새 노래를 창조주께 올려드리며, 언제부터인지 벽돌집의 앞 베란다에도 하나둘 화분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가끔은 시행착오로 멀쩡한 꽃을 죽이기도 했다. 그때마다“글을 쓰듯 꽃을 가꾸고 꽃을 가꾸듯 글을 쓰면, 피지 않을 꽃이 없고 아름답지 않을 글이 없다”라며 달래시는 주님의 음성이 늘 귓전에 맴돌았다. 그렇게 여러 해가 지나가고 앞 베란다에 빼곡히 들어찬 화분들의 일조량을 염려할 만큼 각종 꽃나무의 생리를 알게 되었다.

 이 가을 한복판에서(브라질은 가을) 비로소 집 어느 방향에서 해가 떠올라 어느 방향으로 떨어지는지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아침부터 저녁때까지 따사로운 뒤편베란다로 화분들을 모두 옮겨 놓았다. “ 진종일 햇살이 들도록 집이 설계된 것을 왜, 인제야 알았을까?” 자문하는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가슴을 치는 이야기들이 들려온다.

 나이가 들면 넓은 베란다에 흔들의자를 놓고 별 밤에 노래를 부르자던 사람은 그날이 오기 전에 먼 길을 떠났다. 수영장의 넘실거리는 물도 정원의 넘쳐나는 꽃들도 모두 집을 지키던 나그네들이 누렸다. 햇살 고운 아침 식탁도 느긋하게 앉아볼 여가 없이 학교로 일터로 각각 달려나갔다. 그야말로 모두 새벽 별과 함께 동동거리며 집을 나갔다가 별이 쏟아지면 돌아왔다.

 울타리 봄꽃이 피는지 지는지도 모르는 체 주일까지도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는 세월이 덧없이 가고, 아이들은 어른이 되어 집을 떠난다. 주신 것을 누리지 못하고 없는 것을 찾아다니느라 영원한 현재, 오늘의 분복을 소모한 것이다. 삶의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릴 만큼 분주했던 시간 속에서 과연 주님과는 온전한 동행을 하였을까 싶다.

 주님마저 놓치고 달려온 시간이 더 많았을 것이다. 무엇을 찾느라 오롯한 마음으로 주를 사모하며 잠잠히 동행하는 연합의 길로 가지 못했던 것일까? 세상 바람이 불 때마다 갈대처럼 흔들렸던 부끄러운 날들이다. 긴 세월을 돌아온 고단한 마음을 주님께로 모아주시니, 고요한 눈으로 바라보는 하나님의 세계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소중하고 복되다.

 해묵은 나무처럼 우두커니 지난 발자취를 더듬어보는 속내는 젖어가는데, 청과물 시장에서 안고 온 작은 나무상자가 눈물샘에 어린다. 수줍은 듯한 꽃망울을 두어 개씩 물고 있는 장미 15포기가 담겨있다. 말이 장미지 한 뼘 남짓한 여리디여린 것이다. 세월 따라 우리 곁을 떠나버린 송아지만 한 개가 차지하고 있던 울타리 아래 심어야겠다.

 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빈자리에 덩굴장미가 곱게 자리 잡을 것을 기대하며 다문다문 구덩이를 팠다. 뿌리가 잘 내리도록 분갈이용 배양토에 영양소를 섞어 바닥에 깔았다. 부디 잘 자라서 창조주의 아름다우신 섭리를 찬양하자고 내일을 당부하며 꼭꼭 눌러 심었다. 대지를 적셔주려고 기다리기라도 하였던 것처럼 비가 내린다. 오늘을 감사하며 아름다운 세계를 누리게 하시는 은총과 함께, 빨간 벽돌집 울타리에 은혜의 단비가 흡족하게 내린다. 할렐루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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