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 설교)예수 나를 위하여(사53:4-6)
2019/04/17 22:27 입력  |  조회수 :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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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한마음사랑의교회 원로)
 
예수님은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모두 완성하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살리시고자 십자가에서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4절에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지나가던 사람들은 예수님을 비웃으며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그때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까? 예수님에게 능력이 없으셔서였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져야 하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명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의 모든 고통을 끝까지 참고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1. 예수 밖에 있을 때 우리의 모습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예수 밖에 있을 때 우리는 허물진 백성이요 죄악 된 백성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단 한사람의 예외도 없습니다. 6절 상반부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우리는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께로부터 아주 멀리 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원수 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누가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감히 “나는 죄인이 아닙니다. 나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소리칠 수 있겠습니까? 요한복음 8장에 보면 하루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한 여인을 끌고서 예수님 앞으로 왔습니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님의 말씀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하나같이 양심에 가책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를 다 떠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하게 지킨다고 자부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조차도 예수님 앞에서 자기들은 죄인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했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8절의 말씀처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3장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고난 주간에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까?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기했기 때문입니까? 군중들의 함성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로마의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 주었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허물 때문에, 우리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바로 나 때문에,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이 당하신 고초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고 있는 “그”라는 3인칭 대명사는 누구를 가리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당하신 고초를 여러 가지 말로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찔리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상하셨습니다. 셋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징계를 받으셨습니다. 넷째,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채찍에도 맞으셨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6절 하반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의 짐을 다 담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서 고초를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양편 강도의 십자가 고통이나, 어떤 순교자들의 고통이나, 나라를 위해 의연하게 목숨을 바친 자들의 죽음과 비교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통은 우주적인 고통입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고난은 자기 백성이 지옥에서 받아야 하는 고통을 한 몸에 담당하신 고통으로 어떤 찬양으로도, 어떤 글로도, 어떤 시로도 표현이 불가능한 고난으로 하늘이 어두워 지고 땅이 진동하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부르짖기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이 십자가를 사랑하고 자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한꺼번에 다 감당하시고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우리가 찔려야 하는데, 우리가 상해야 하는데, 우리가 징계를 받아야 하는데, 우리가 채찍에 맞아야 하는데, 예수님이 그 모든 아픔을 한꺼번에 품으시고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셨던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에 찾아온 은혜를 생각해 봅시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었을 때 우리는 허물과 죄악으로 인해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징계를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모든 죄 값을 다 지불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받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면서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또한 죽음이라는 저주에서 해방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채찍에 맞으시고 보혈을 흘리심으로 더 이상 죄와 사망에 종 노릇할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고 죽어서는 약속대로 예배한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되는 은혜 아래 있게 된 것입니다.
 결론
 이제 우리는 누군가가 “너는 예수를 믿어서 무슨 복을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당당하게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는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입니다. 나는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그가 주시는 참된 평안 가운데 행복하게 산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세상을 떠난 후엔 나를 위해 주께서 예비한 천국의 생활이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께서 고난 받으신 고난주간을 브라질 땅에서 보내며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음을 기억하고 고난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며 이웃을 돌아보며 영혼 구원에 힘쓰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드립시다.
-아 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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