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장 남은 마지막 달력을 보면서 환우들과 함께 울고 웃었던 한 해를 돌이켜보니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었습니다. 항상 문단속을 잘 하느라고 하지만 어느새... 급히 찾으러 나간 도우미 손에 끌려 오시면서,  “아~이고 덥다” 엄마 손에 끌려 따라오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화를 내려다가도 미소가 절로 나오곤 합니다. 차곡차곡 접은 휴지를 잔뜩 손에 들고 왔다 갔다 하고 계셔서 “화장실에 갈래요?”하면 “화장실이 뭐야?”... 용변을 다 마치고 난 후에도 뒤돌아 보시며 “여기가 어디야?” 말씀하십니다. 정리하시는 것이 습관인 듯 어질러진 침대만 보면 반듯하게 개켜놓으시는데, 그러다가 오해를 받고 방 주인에게 쫓겨나기도 하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예쁜 치매 J환우는 찬양 하시는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젊어서부터 성가대원으로 봉사해오셨다는 권사님은 아직도 찬송가 가사만은 거의 기억하시며 맑은 목소리로 듣는 이들에게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정기적으로 오셔서 환우의 건강을 검진해주시는 Dr. Salomao 선생님은 “BONEQUINHA”라고 부르며 재미있어 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잘했어?”, “난 미안하기만 한데”, “뭐가 뭔지 난 모르겠어”, “여기가 어디야”, “나 참~ 한심하다”, “내가 왜 이러니?”,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하시며 한숨을 쉬곤 하십니다. 기억이 지워진 텅 빈 머리 속에서 자아를 찾으려는 모습이 안쓰럽고 슬픈 마음이 듭니다. 손을 잡아 당기며 “가자. 가~자~”고 조르기도 하십니다. “어디로?”하고 물어보면 “집으로 가자”하고 대답하시고, “여기가 우리 집인데?”하면 “아니야. 저기 가자”하시며 밤에도 여기저기 왔다 갔다 하시는 모습이 ‘내 본향 집’을 찾으며 방황하는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간암 말기 환우가 입실하셨습니다. 너무나 늦게 알게 된 사형선고로 당황한 가족들이었습니다만 신앙으로 준비하며, 환우님 자신이 조용히 받아들이는 모습에 간호를 하며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급속히 진행되어 오는 진통을 가족들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참으시며, 기력이 없으셔서 받아야만 하는 간병인들의 도움을 미안해하시며... 따님이 쓰다듬어 주는 손을 잡고 유난히 맑은 눈으로 오랫동안 바라보시는 모습이 모든 것을 이야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이 땅에서 진 무거운 짐 모두 내려놓고 가신 환우님께서는 지금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편히 쉬시리라 믿습니다.
 우리 샘물식구들은 취침 전 천국소망의 찬양예배를 좋아하십니다. 즐겁게 부르는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찬양한 후,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건 순서가 없어요”하면 모두 끄떡이십니다. 연세 많으신 권사님이 “내 나이가 제일 많으니까 먼저 가서 ‘어서 와’하고 내가 마중 나가야지”하셔서 모두 웃었습니다. 늘 가족을 기다리는 마음들이시지만 “벌써 금요일이야?”하시며 세월이 참 빨리 간다고 하십니다.
 지난 달에는 이화유치원 어린이들이 소풍을 왔습니다. 간식으로 가져온 과자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할머니, 내 과자 잡숴보세요”하며 드리니 너무나 행복해 하십니다.

 환우님은 자신의 본 교회 목사님과 교우들의 심방예배에 위로를 받을 때 그렇게 감격해 하십니다.   
 벌써 이 해도 다 가고 있는데 경제가 좋아질 전망이 없는 모양입니다. 만나는 이마다 걱정들 하십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원봉사자들은 와서 요양원의 손질이 필요한 부분들을 살피며 잔디도 깎아 주시고 ‘샘물농장’ 농산물도 팔아다 주십니다. 지난 일년 동안도 ‘샘물의 집’을 사랑해 주시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리며, 새해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지경혜 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