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숙자 선교사(베데스다교회)
그렇다. 과연 감히 그 주님의 심경과 비슷하다고 한다면 주님이 화내실까? 영혼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외아들도 죽이셨는데.... 사역을 시키시는 동안에 우리 부부의 자녀를 향한 마음과 눈을 가리셨다가 이제 사역이 끝나가는 이때에 눈을 열어 자녀들을 보게하시는 것 쯤이야 뭐가 어려우셨겠는가?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전3:1) 자녀들과 함께 있어주지도 못했기에 주님이 함께 계셔 주셨고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밤일을 마치고 두 세 시간으로 잠을 줄이며, 엄마의 따뜻한 밥상은 커녕 텅빈 숙소에 가방을 던지고 허기를 달래며 책과 씨름하던 그 순간들을 기억해 주신 하나님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그들의 오늘을 만들어 주셨다는 말이다. 할렐루야!!!! 그들이 엄마가 보고 싶다고, 엄마의 밥상이 필요하다고 울 때 우리 부부는 자녀들이 아닌 주님의 보혈로 맺어진 식구들과 울고 웃으며 기쁨으로 사역을 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하는 것은, 만일 그때 이런 유의 아픔을 우리에게 주셨다면? 아마도 사명버리고 아이들에게 달려갔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선교의 마침표는 없지만 하여간 일상으로 돌아갈 날이 가까운 80세가 넘은 이때에 주님의 인성의 눈물을 내게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할렐루야! 엄마 아빠가 하나님께는 점수가 없어도, 우등생이 되지는 못했어도 열심히 살아온 선교 현장의 일들을 글로 남겨주면 훗날 자녀들이 이 글을 읽으면서 혹 아팠던 마음이 있었다면 연기같이 사라지고 고난이 갖어온 부활을 찬양하며 더 열심히 살지 않을까? 미안한 마음을 저울로 달아 보일 수도 없고, 그 양을 되빡으로 되어 볼 수도 없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 했는데 써 내려온 그 글들이 아이패드 손가락 하나 잘못 눌러 사라졌으니 앞이 캄캄했다. “하나님이 자녀들을 향해 미안해하는 부모의 마음조차 허락지 않으심인가? 아님 더 이상 글을 쓰지 말라고 하심인가 말이다. 찢어진 마음을 말씀과 기도로 바느질 하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