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척들이 없는 미국에서의 명절은 참으로 외롭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있는 가정은 괜찮은데 한 가정만 미국에 왔을 경우에는 찾아 갈 곳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다. 정월 초하루가 그렇고 추석이 그렇고 추수 감사절이 그렇다. 한국에서는 일년에 두 차례 정월 초하루와 추석 때에 친척들이 모여서 재미있게 보낸다. 여기에는 가족들이 이민 온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런 것이 없다. 일월 초하루 날에도 친척들이 없기 때문에 밖으로 놀러 나간다. 참으로 쓸쓸하게 지낸다. 추수 감사절 때 미국 사람들은 가족들끼리 모여 음식을 장만해서 같이 먹는데, 친척이 없는 한인들은 가족끼리 놀러 나가는 것이 고작이다. 나는 친척이 없고 우리 식구들만 있었기 때문에 추수 감사절에 친구 목사 가족과 함께 산에 도토리 주우러 갔다. 도토리 줍고 와서는 우리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놀다가 헤어지는 것이 명절의 행사였다. 지금은 형제들이 있어서 별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명절 때 이런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서 가정으로 신자들을 초청한다. 터키를 같이 나누어 먹고 음식을 대접하고 그들을 위로하는 일들이 많다. 특히 유학생 부부들은 더 외롭다.
 사방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나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 미국 땅이다. 외롭고 고독한 땅 그곳이 미국이다. 크고 풍요로우며 모든 것이 좋으나 외롭다. 만나는 사람들이 제한되어 있고 말하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미국 사회로 무한히 뻗어나가지를 못하고 있다. 한국에서처럼 선후배나 친척 등 아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한국에는 아는 사람들이 주위에 너무나 많다. 직장에 가면 모두 한인들을 만난다. 그래서 미국에서 이민 목회를 하던 목사님이 한국에 휴가를 다녀왔는데 첫마디가 “ 야, 한국에 가니까 한국 사람이 그렇게 많데” 라고 죠크를 했다. 이런데서 목회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말했다. 모두가 다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여기는 한인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흑인도 만나고 멕시컨도 만나고 백인도 만난다. 커뮤니케이션이 잘되지 않으므로 답답함을 느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외로움을 느끼고 열등감까지 가지는 일이 많다. 그래서 한인들끼리 모여 살고 쭉쭉 미국 사회로 진출해 나가는 일들이 드물다. 어떤 학자는 엘에이 리틀 도꾜에 사는 일본인들은 일본에 사는 일본인 보다 20년이나 뒤떨어졌다고 했다. 왜냐하면 미국 올 때의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살기 때문이란다. 변화하는 세계 정세나 미국 사회를 좇아가지 못하고 늘 자기들끼리만 모여 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뒤떨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 사회만이 아니라 한인 사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미국을 알고 미국 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모든 면에서 앞서 있지만, 그렇지 않고 한인끼리만 모여 사는 일세들은 한국의 한인들 보다 뒤떨어진 면이 많다. 이것이 미주 한인의 현 주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