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근 목사(미성대 명예총장)
6.25사변이 터지면서 시골동네 처녀들이 일제히 머리를 쪽 짓고 집 안으로 숨어들었다. 북조선 점령군들이 소문을 퍼뜨렸기 때문이다. 미군이 들어오면 처녀들을 무차별로 겁탈한다는 악의적 소문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섹시’와 비슷한 발음 때문이었을까, 미군들이 ‘샥시’(색시)라는 말을 잘 알고 있었다. 1.4후퇴 때는 더 했다. 중공군이 물밀 듯 밀려 왔는데 역시 처녀들은 다시 풀었던 쪽을 찌고 결혼한 여자로 변장 잠적했다. 그런데 실상 미군이나 중공군이나 마구잡이로 성폭행 한 사례는 우리 동네에서는 전혀 없었다. “대국의 군대라 그런가, 그 놈의 게다짝들과는 아주 다르구먼.” 어른들이 하는 말씀이었다. 게다짝 군대란 물론 세계 제2차 대전 때의 일본군대를 뜻한다. 도시나 일본열도로 가서 돈 많이 버는 데 취직시켜 준다는 감언이설로 처녀 유인의 낚싯밥을 삼았다고 했다.
지난 연말 한국과 일본 사이에 드디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타결되었다. 허지만 아직도 후유증으로 크게 몸살을 앓고 있다. 잘 했다는 박수보다는 굴욕적 합의라는 비판이 더 많다는 여론이다. 한국과 일본 당사국은 물론 미국, 북한,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그리고 네덜란드까지 모든 이해 당사국에서 소용돌이가 일어나고 있다. 위안부 문제를 해방 70년이 되도록 방치한 것에는 두말할 필요도 없이 가해자인 일본의 책임이 제일 크다. 일본이 고상한 국격의 나라라면 제2차 대전이 끝나면서 바로 머리를 조아리고 뼈를 깎는 아픔으로 피해국가와 국민들에게 사죄했어야 한다. 그리고 피해자들의 항의를 받기 전에 자진해서 피해 배상을 했어야 한다. 남에게 폐 끼치는 일을 무척 수치스럽게 생각한다는 일본인들인데 어찌하여 국가적으로는 그토록 후안무치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필자는 일본이 독도 문제를 거론할 때마다, “일본이여, 어찌 대국이라는 이름을 가진 나라가 바위 몇 개의 독도를 탐낸다는 말인가? 제주도도 아니 한반도 전체가 일본 것이라고 우기지 않고.....” 그렇게 항의문을 쓴 적이 있다. 이번 타결에서도 일본의 제안이 정말 옹졸해 보인다. 얼마만큼 더 기다려야 일본이 경제대국만큼이나 윤리대국이 될 수 있을까. 얼마의 세월이 더 흘러야 독일만큼이나 마음 깊이 사죄와 보상을 할 수 있을까. 피해 국가들이, ‘그만큼 사죄했으면 됐다’는 말을 스스로 할 때가 올 수 있을까.
우리 세대는 ‘반공반일’에 세뇌되어서 그런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유난히 강한 것도 사실이다. 아직도 ‘일본 사람’보다는 ‘일본 놈’이 입에 익숙하다. 그래도 미래지향적으로 생각하면 윤리저능아격인 일본을 탓하기에 앞서 우리들이 고쳐야 할 점도 적지 않다.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이스라엘 국민들을 벤치마킹했으면 좋겠다. 6백만 명 이상을 학살한 히틀러 독일 등을 향하여, “우리는 용서한다, 그러나 잊지 못한다”고 했던 선언 바로 그것이다. 목사로서 용서해야 용서받는다는 설교를 수없이 해 왔지만 실상 일본을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선친에게도 따귀를 때리고 발길질 했다는 일본 경찰, 누님도 미수에 그치기는 했지만 위안부로 끌어가려고 온갖 유혹과 협박을 했었다는 일본을 용서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는 먼저 용서해야 한다. 맞은 놈이 때린 놈을 용서하는 것이 더 품격 높은 일이기 때문이다.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라도. (마1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