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경남 목사(서울교회 담임)
새해가 되면 새롭게 결단합니다. 중요하지요. 그런데 오래 가지 못하는 게 문제입니다. 결단하는 것으로 새롭게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새롭게 되는 것은 결단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입니다.
1. 피의 백성.
새 백성의 창조는 유월절 어린 양에서부터 시작됩니다. 9번의 재앙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새로운 백성이 만들어지는 게 아닙니다. 물론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자동적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은 어린 양의 피가 있어야 합니다. 피로 만들어져야 합니다. 피 없는 백성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피를 보시고 그들의 집을 넘어가겠다 하셨습니다.‘넘어가겠다?’ 못 본체 하고 넘어간다는 말씀입니다. 문에 바른 피를 보시고 그들의 죄를 문제 삼지 않고 그냥 넘어가겠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너희도 똑같은 죄인이지만 그 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죄를 문제삼지 않고 넘어가시겠다는 겁니다. 성막의 시은소는 ‘가리운다’ ‘덮는다’는 뜻입니다. 예배당 안에 전기불이 있습니다. 이 불에선 세밀하게 잘 보이지 않아요. 그런데 태양 아래 가 보세요. 어쩌면 그렇게 먼지가 많은지. 인간들? 다 그저 그래요,. 다 그만 그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 앞에 서면? 다 보여요. 진노의 대상이에요. 그래서 가려져야 해요.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 소멸하시는 불이십니다. 그 앞에선 어떤 죄인도 설 수 없습니다. 조금 더 죄인 덜 죄인이든 상관 없습니다.
완전히 거룩하지 않으면 소멸입니다. 그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를 가리는 것은 오직 은혜로운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가장 무섭습니까? 에볼라? 아이에스? 전쟁? 거룩하신 하나님의 진노입니다. 이 진노 앞에 바로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적이 되시면, 우리는 두려움에 죽습니다. 살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피만 의지해야 하지요.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철저히 구별하라는 겁니다. 애굽인과 자신을 분명히. 상황에 따라 애굽인처럼, 유리하면 애굽인처럼 살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구별하라는 겁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할 수 있는 게 있고 거절해야 하는 게 있습니다. 이런 기준이 스스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성령의 끈으로 묶여 있습니다.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새로워진 양심의 끈이요 윤리의 끈입니다. 보세요. 고속도로에서 한참 달리다가 카메라가 나타나면, 어흠 하면서 속도를 줄입니다. 함부로 달리지 않아요. 카메라 앞에서처럼 행동하세요. 하나님 앞에서도 말입니다.
2. 높아진 백성.
설마 했던 일이 벌어졌어요. 애굽 사람 장자를 다 치셨어요. 바로의 장자, 노예, 옥에 있는 장자도 죽었어요. 짐승까지도요. 무서운 재앙입니다. 상상해 보세요. 사람이 죽으면, 가게에 루또라고 붙여요. 한국은 사람들 찾아오기 쉽게 ‘아무개 상가’라고 등을 달아요. 그 집에 누가 죽었구나 하죠. 그런데 한 집도 예외 없이 애굽인 모든 집에 이 등이 달려있어요. 얼마나 무서워요? 맏아들이 죽었어요.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요? 인간들의 죄가 하나님의 맏아들을 잃게 했어요. 하나님의 슬픔을 아세요? 고통 중에 자식이 먼저 죽은 고통. 가장 큰 고통이죠.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심판은 엄청난 정신적인 갈등이 동반되는 무서운 재앙이에요.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하나님의 재앙에서 벗어난 자녀의 복을 누리시길 기원합니다. 아멘. 바로가 놀랐어요. 양 소 다 가져가. 그리고 축복해 줘. 달라는 금 은 패물 의복 다 줬어요. 이스라엘 자손이 엄청나게 위대하게 보인 거에요. 대통령이 우리 가게에 오셨어요. 옷을 골랐어요. 돈 받아요? 그냥 가지세요. 위대한 분이잖아요. 드리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요.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떠난다. 애굽 장자 다 죽는다. 애굽인들이 너희가 달라는 대로 금은 패물 의복 다 줄 거다. 가능한 일인가요? 믿을 수 있겠나요? 애굽인들이 히브리 노예를 얼마나 우습게 알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모두 달라져요. 결국 하나님 말씀대로 된 거에요. 보세요.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은 우리의 힘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들에게 대단한 사람으로 보이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세요. 무엇보다 하나님 말씀에 절대적인 권위를 두세요. 그리고 소화하세요. 늘 출렁이게 하세요. 암기하세요. 충만하게 하세요. 나를 끌고 가게 하세요. 그게 말씀이 나를 인도하는 겁니다. 그것보다 더 안전한 길은 없어요. 경험? 믿지 마세요. 너무 작은 부분이에요. 또 언제나 통하지도 않아요. 다른 사람의 한두 마디 말에 내 영혼을 싣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그 사람 쓰러질 때 나도 쓰러져요. 오직 살아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두세요. 반석입니다. 그래도 됩니다. 환타스틱이에요.
3. 부르심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열 번째 재앙? 마지막 대심판의 예표에요. 예표이기에 다 죽이지 않아요. 그 날? 전 우주적인 사건이구요. 갑자기 임해요. 그날까지 악의 세력 의의 세력 공존하구요, 일상적인 생활 그대로 해요. 장자가 죽는 그 밤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전히 반죽 만들잖아요. 시집가고 장가갑니다. 정상적인 생활 합니다. 그러나 한순간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나뉘어요. 두 사람이 자다가도 나눠요. 부부도 분리돼요. 맷돌 갈다가도 분리돼요. 시어머니와 며느리두요. 이때 정신 차려야 돼요. 왜? 눈에 보이는 것을 갖고 유혹해요. 무엇보다 돌이키지 마세요. 지금 주어진 부르심에 충실해서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오직 앞만 보고 나가세요. 롯의 아내처럼 재물 아까워서 뒤 돌아보면 소금 기둥이 되요. 주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세요. 노후를 위해 준비하는 것보다 자기 영혼을 위해 늘 끊임없이 준비하세요. 시집 장가 먹고 마시는 것? 죄 아니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외면하고 자기 욕심에 따라 사는 것은 죄에요. 그렇게 살아도 별 일 없는 것 같아요. 아마도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될 겁니다. 그런데 주님은 우리들에게 정신을 차리고 옛 욕심으로 돌아가지 않도록 조심하라 십니다.
부르심을 받는 것도 귀한 일이지만 온전히 따라가지 않고 옛 욕심을 따라가다가는 그 부르심을 놓치고 맙니다. 날마다 새로운 동기로 사십시오. 거룩한 삶입니다. 놓친 게 있다고 되돌아가지 마세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부르심을 좇아가는 게 바른 성도의 삶입니다. 이게 새 백성의 삶입니다. 올해 이렇게 삽시다. 새로운 동기로 말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