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지난주 스코틀랜드 뮤어 필드 링크에서 열린 브리티시 오픈, 자기네들은 오픈 경기의 지존이란 자존심 때문에 앞에 ‘브리티시’란 말 따위를 빼고 그냥 ‘디 오픈(The Open)’이라고 불러 달래서 그렇게 불러주는 프로 골프 메이저 대회에서 승리를 거둔 필 미켈슨은 한편의 환상의 드라마 주인공이었다. 모두 4일 동안 4라운드 경기를 펼치는 이번 경기에서 3라운드까지 미켈슨은 선두주자와 5타차를 보이며 별로 눈에 띄지 못했다. 상위그룹이긴 했지만 리더보드에서 한참 내려가야 겨우 이름이 보이는 정도였다. 그런 그가 역전승을 거둔 것이다. 마지막 날 그는 무려 5언더파를 몰아치면서 승리의 여신을 자기편으로 끌어 들인 것이다. 첫날엔 잭 잔슨이 선두였다. 둘째 날에는 리 웨스트우드와 타이거 우즈가 급부상했다. 세째날에는 웨스트우드와 아담 클락이 선두 싸움을 벌였다. 타이거 우즈를 넘어서겠다는 ‘신 골프 황제’ 로리 매길로이는 어디 찾아볼 수도 없었다. 바람과 거친 러프, 오르막 내리막이 반복되는 그린 같지 않은 그린 때문인지 세계 골프의 왕중왕들이 모인 대회에서 언더 파를 친 선수는 오직 필 미켈슨 한명. 골프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부자가 된 기라성 같은 프로골퍼들이 맥을 못추고 오버 파를 치면서 헤매야 했다. 그러나 필 미켈슨은 바람과 러프, 벙커와 씨름하면서 한 홀, 한 홀을 또박또박 걸어 나갔다. 보기(bogie)가 아니라 더블 보기를 칠 때도 많았다. 그러나 흔들리지 않고 자기 페이스를 지키며 앞으로 갔다. 마지막 날 리 웨스트우드와 아담 클락이 퍼팅에 난조를 보이고 때로는 벙커에서 씨름하고 있을 때 미켈슨은 13번 홀, 14번 홀에서 꿈같은 버디 펏을 연속 성공시키며 타수를 줄여나갔다. 그리고 마지막 18번 홀에서도 멋지게 버디를 성공시킨 후 승리를 확신하듯 두 손을 높이 치켜 들었고 옆에 있던 캐디는 눈물을 흘리며 미켈슨을 끌어안았다.
 암 투병 중이던 아내를 위해 경기를 포기하기도 했고, 딸의 졸업식에 참석하느라 샌디에고에서 밤 비행기를 타고 허겁지겁 동부지역 경기장에 도착하기도 했던 그의 찐한 가족사랑은 세상이 다 아는 애기다.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그 아내와 두 딸을 부등켜 안고 감격해 하는 일가족의 모습은 그 날의 하일라이트였다. 전반전의 승리가 후반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후반전에 뒤집어지는 경우가 많다. 1~2라운드 잘 쳐도 3~4 라운드의 성적이 승리를 좌우한다. 그래서 구지 전반전의 실패를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리더보드에 마음 쓰지 말고 벙커와 러프를 피해서 가던 길을 성실하게 가는 것이다. 건강 전문가들에 따르면 60세 정도를 잘 살았으면 100세 시대를 염두에 두어야한다고 한다. 어쩌면 지금까지 일해 온 세월보다 더 많은 세월을 놀면서 살다가 죽음을 맞이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 긴 세월을 무엇하고 살아간다? 그렇게 오래 살다보면 아마 입에서 쉰내가 날지도 모르겠다. 피곤하고 지칠 것이 뻔한 그 인생 후반전을 어떻게 설계해야 하는가? 별 방도가 없다면 지금까지는 전반전이고 이제부터는 후반전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인생은 2모작이라고 생각하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2모작하면 우선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건강이 받쳐주면 도전은 가능하다. 다시 논에 물을 받아 못자리를 하고 벼 씨를 뿌리고 그리고 때가 되면 모내기를 하는 인생 2모작의 키워드는 용기와 근면. 두려워하지 말고 부지런히 오던 길을 가는 것이다. 그날 미켈슨에게 배운 것이 그것이다.
 60을 넘어서니 여기저기서 연금, 소셜시큐리티, 401K, 생명보험, 그런 말들이 오고 갈 때 무심코 그냥 스칠 수가 없게 되었다. 나는 노 연금, 노 401k, 노 생명보험. . . 받는 것이라곤 딸랑 소셜시큐리티 연금, 그것도 쥐꼬리 수준으로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이 밀려올 때도 있다. 만리장성같은 길고 긴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갈꼬? 번쩍 떠오르는 대답은 이것이다. 영원한 현역으로 사는 것이다. 일거리가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현역으로 살아가는 후반기...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이 주변의 눈치 따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 나이로 보상받으려는 안일주의를 극복하는 끈기, 쉽게 포기하기를 거부하는 열정일 것이다. 그렇게 가다보면 환상의 버디 퍼트도 가능할 수 있지 않으랴! 전반전에 이루지 못한 ‘줄 버디’로 후반전에서 어쩌면 승리 인생의 자랑스러운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도 있다는 즐거운 환상은 분명 축복이 아닐 수 없다. 골프 채널에서 가끔은 인생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