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아내는 여러모로 부족한 남편을 만나서 고생을 많이 하였다. 결혼 당시부터 지금까지 경제적으로, 육체적으로, 심적으로 고생을 많이 하였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태어난 직후부터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울고 보채기를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잘 놀래고 어린 아기 때는 정말로 힘들게 한 아기였다. 오죽 했으면 흔들의자 세 개가 부서질 정도였으니 가히 짐작할 만하다. 그런 중에 둘째가 연년생으로 임신이 된 것이다. 첫째를 출산하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첫째 하나만 낳기로 하고 피임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이미 둘째를 임신되게 하신 후에 피임을 했으니 우리의 계획이 그만 수포로 돌아가게 하셨다. 그 당시 서울에서 식료품 상회를 운영하고 있을 때인데 어느 날 아내가 머리가 몹시 아프다고 하였다. 아마도 첫째가 힘들게 하였고, 또 그런 중에 식료품 상회를 운영했으니 심신 적으로 힘들었을 때였다. 그런데 임신을 했기 때문에 약도 복용을 하지 못하고 지나갔는데 심한 두통이 있고 나서 오른쪽 관자노리 부분이 부어올랐던 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이 부종이 있고 나서부터 입이 잘 벌려지지를 않는 것이었다. 그러니 음식을 먹기가 상당히 불편하게 되었던 것이다. 병원에 가서 진찰을 해보았지만 정확한 원인을 알 수가 없었고 그래서 적절한 치료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물론 여러 병원을 다녀 보았지만 그때마다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했던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이제 부었던 관자노리 부분이 딱딱하게 굳어지게 되었다. 그곳이 머리 부분이라 쉽게 수술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수술도 적절하지 못하니까 치료를 하기 위해서 그 곳에 한동안 뜸을 뜨러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그 부위가 뜨거운 불에 화상을 입어 흉터가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좀처럼 치료되지를 아니하였고 더욱 악화되어 이제는 더 입을 벌릴 수가 없게 되었다. 말이 그렇지 입이 잘 벌어지지 않으니 음식도 잘 먹지 못하고, 물도 잘 마시지를 못하고, 말도 수월하게 하지 못하고 심지어 칫솔질도 제대로 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옆에서 그것을 지켜보면서도 치료를 제대로 못해준 무능한 남편이었다. 그렇게 10여년을 보내던 중에 너무나 힘들어서 전주에 있는 종합 병원 성형외과에서 진찰을 받고 수술을 받으려고 했더니 의사 분이 이 수술은 어려운 수술인데 만약 잘못하면 눈에 연결된 시신경이 잘못되어 눈을 계속 뜨고 있을 경우도 있고, 눈이 계속 감길 수도 있다는 소견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수술할 경우 성형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3과에서 협력하여 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러니 수술을 해도 완치를 장담을 못하니 어찌 수술을 할 수가 있었겠는가? 포기하고 예수병원 치과에 가서 상담을 한 결과 전주에 종합 병원에 치과(악안면과) 교수님을 소개 시켜 주어 그곳에 가서 상담해 본 결과 “수술로 완치 할 수 있으니 걱정 마세오.”라는 좋은 소식을 듣게 되어 그 분을 통해서 수술을 받게 되었다. 발병된 지 10여년 만에 수술을 받게 된 것이다. 약 8시간의 긴 시간동안 수술이었지만 감사하게도 수술이 잘 마쳐졌고, 수술 이후에 재활 치료를 통해서 다물어 졌던 입이 잘 움직이게 되어 정상적인 생활을 하게 된 것이었다. 좋은 의사 분을 만나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난 일이지만 때가 되매 하나님께서 좋은 분을 만나게 하셨고 치료를 받게 하신 은혜의 결과였음을 깨닫고 감사를 드린다. 그 후에 첫째가 턱이 잘 못되어 또 그 분을 통해서 턱 수술을 했는데 수술이 잘되어 너무나 감사한 일이다.
아내의 투병 생활은 10여 년 동안 너무나 고통의 세월을 보냈다고 할 수 있다. 지금도 그때의 고생을 생각하면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 금할 길이 없다. 무능한 남편을 만나서 고생을 너무나 많이 하였고, 지금도 힘들게 하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부족한 목회자의 아내가 되어서 많은 고생을 한 시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