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회피: 은신 아닌 가식
왜 우월적 위치설정을 통해 자신을 가림으로 타인으로부터 도피하는 것이 은신이 아닌 가식인가? 이것은 ‘주변 사람들이 자기에게 해를 입히기 전에 그들을 자기로부터 멀리 밀어냄’으로써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얻으려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트라우마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더욱 세게 끌어안게 만든다. 자기 마음에 상처를 입지 않기 위하여 주변 사람들을 밀어 내면 고립감이 커지기 때문이고, 그것은 트라우마에 대한 애착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른이 됨과 동시에, 남에게 잘 지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할 사회적 필요 때문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어떤 것’ 뒤로 감추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자기를 구원했다고 생각한 것이 오히려 자기를 더욱 갇히게 만들게 된다.
그러므로 이 ‘어떤 것’이 남들에 비해 우월한 위치이든, 남을 탓하는 생활 양식이든, 그것이 자기 안에 고스란히 남은 트라우마가 남에게 드러나지 않게 하는 한, 그리고 그것이 구원이라 믿는 한, 그것은 회피가 아니다. 그것은 가식이자, 위선이다.
우리 내면의 트라우마, 또는 다양한 형태의 죄악은 언젠가 드러나게 되어 있다. 감춘다고 해서 감춰지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본성적으로 죄인이기 때문에(시 51:5), 마음의 상처는 남에게 들키기 마련이다. 우리도 그것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꾸 스스로를 감추려 하고 숨으려 한다. 이 또한, 아담과 하와로부터 물려받은 우리의 죄성 때문이다.
우리가 이 죄와 트라우마의 무거운 속박에서 벗어나는 것은 참 구원을 받는 길 뿐이다. 그런데 참 구원은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 참 평안도, 참 기쁨도, 스스로의 힘으로 얻을 수 없다. 이것이 인간 본성의 외침이자,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이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롬 7:24)
그러나 이 구절 바로 뒤에 이 말씀이 나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 그렇다. 참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다. 예수님은 친히 이렇게 말씀하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1).”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이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리라(요 14:27).”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이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구원으로 말미암는 이 자유와 안식, 이 기쁨과 평안은 오직 그분 안에서 얻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요 15: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