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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에는 동네마다 공공도서관이 있다. 도서 카드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책을 빌려 볼 수 있다. 보통 3주 동안을 빌려준다. 나는 오렌지카운티의 스탠톤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동네에 있는 도서관으로 갔다. 먼저 카드를 달라고 했다. 내가 여기 처음이라고 하자 “어디에 사느냐”고 물었다. 주소를 말해 주었더니 “그 집에 산다는 증명을 가져 오라”고 했다. 전기나 수도세 낸 영수증을 가져오면 도서실 카드를 만들어 주겠다는 것이다. 집에 증명이 될 만한 것들 가운데 수도세를 낸 영수증이 있었다. 그것을 가지고 가서 자동차 면허증과 함께 보여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도서 카드를 만들어 주었다. 자동차 면허증은 주민 등록증과 같이 취급되는 ID(Identification)이다. 얼마나 친절하게 잘해주는지 기분이 썩 좋았다. 규정대로만 해주면 언제나 기분 좋게 일해 주는 나라인 것이다.
나는 아이 둘을 데리고 도서실로 들어가서 한 바퀴 삥 둘러보았다. 당시 큰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둘째 아이는 2학년에 다닐 때였다. 도서관에 책을 분류해 놓았는데 1학년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책, 유치원 어린이가 읽을 수 있는 책, 학년마다 수준에 맞는 책들이 다 분류되어 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미국 온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수준을 낮추어서 유치원생들이 읽는 책들을 각각 10권씩 빌렸다. 내가 선정해준 것도 있고 아이들이 읽고 싶은 것도 뽑았다. 참으로 편리하고 조용하고 깨끗했다. 기회의 나라, 책 읽고 싶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고 공부하고 싶으면 얼마든지 정보를 제공받고 공부할 수 있는 나라임을 실감했다. 3주 동안을 빌려주었기 때문에 충분한 기간이었다.
과거 내가 어렸을 적에는 시골에 도서관이 없었다. 지금도 내 고향에는 이런 도서관이 없다. 잘 꾸며져 있는 미국 공공도서관을 볼 때 너무나 부럽고 내 고향 어린이들이 생각났다.
미국의 여름 방학은 길고 길다. 덕분에 어린이들에게는 기쁨이지만 부모들에게는 고역이다. 매일 아이들과 지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방학은 6월 중순부터 9월 첫 주 월요일 노동절까지 거의 2개월하고도 보름이나 된다. 나는 이 방학 때 아이들에게 도서관의 책을 빌려다가 읽게 했다. 한 권을 다 읽은 다음에는 그 내용을 이야기했다. 책을 다 읽었는지 확인도 하고 발표하는 훈련도 할 수 있었다. 두 아이가 다 읽은 다음에는 도서관에 가서 책들을 반납하고 다시 열 권을 빌려서 다 읽은 다음에는 독후감을 말하게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 했던 것이 두 아이들의 교육에 좋은 영향을 준 것 같다. 그렇게 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여름 방학이 너무 길기 때문에 무료하게 보내지 않고 잘 활용해서 좋은 교육의 기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고, 둘째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사랑하고 가까이 하면서 지식을 쌓기 위한 것이고, 셋째는 책 읽는 습관과 독후감을 꼭 말하게 함으로 발표하는 능력도 있게 하기 위한 것이고, 넷째는 제일 중요한 이유인데 아이들에게 영어를 습득케 하기 위한 것이었다.
미국 아이들은 부모가 말해 주는 것을 통해서 어렸을 적부터 단어나 어휘가 풍부하지만 우리는 집에서 한국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어휘가 부족한 것은 뻔한 것이다.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부모가 못해 주는 것을 책을 통해 가질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
이런 훈련을 받아서인지 큰아들 샘은 전도사로서 성공적으로 사역하고 있고 둘째는 병리학과 메디칼을 공부하면서 연구 발표할 때마다 탁월하게 프리젠테이션을 잘 해서 상을 몇 번 받아오곤 했다.
아이들은 방학 때마다 이렇게 훈련을 받았다. 한번은 아이들이 말을 듣지 않고 숙제도 안 했다. 얼마나 화가 나는지 방으로 데려다가 회초리로 두 아이를 몹시 때렸다. 아이들은 깡충 깡충 뛰면서 “아빠 잘못 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께요.” 둘이서 울며 빌었다. 나도 혈기를 참지 못하고 한참 때리고 난 다음에는 내 방에 가서 문을 안으로 잠그고 또 한참 울었다.
나도 마음 상한 자요, 그들도 마음 상한 아이들이다. 미국 생활의 고달픔과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아이들에게 화를 퍼부은 격이 되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매 맞을 일도 아닌데 내가 공연히 그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은 아니었나 하고 그 일이 생각 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은 벌써 그때 일을 잊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잊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이를 학대하거나 동물을 학대하면 아이를 데려간다. 보호하기 위해서다. 아이를 데려갈 정도는 아니었지만 공부를 안 한다고 분별없이 때린 것은 지금도 후회가 되는 일이다.
방학 때 아이들은 하루 종일 책만 읽는 것이 아니고 싫은 것을 억지로 하는 것도 아니다. 놀기도 하고 수영도 하고 여행도 가고 하지만 책만은 꼭 읽게 한 것이다. 가능하면 소리 내어 읽게 했다. 그것이 좋은 교육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중문 초등학교 6학년 때 담임이 이금실선생님이셨는데 우리 교실에는 여러 개의 글들이 써서 붙여 있었다. ‘천재는 99%의 노력과 1%의 영감이다’,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 나는 이런 글들을 마음속에 담고 꿈을 키웠다.
아이들에게 어렸을 적 시골 학교에 다녔던 기억들을 말해 주면서 책을 통하여 위대한 간접경험들을 갖게 했다. 지금도 자식들의 머리 속에는 어렸을 적 스탠톤에 살 때 그 도서관의 향수와 추억을 아름답게 간직하고 있다. 가끔 그 때의 이를 떠올리면서 이야기한다.
지금 그들이 커서 다 최고학부의 공부를 하고 있다. 특히 둘째가 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매일 밤늦게까지 책과 씨름하는 것을 보면서 그때 그 도서관의 영향으로 지금 공부하는 습관이 형성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미국에서의 스탠톤 도서관의 아름다운 추억은 우리의 마음속에 깊이 남아있다.
고남철 목사(나성충신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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