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질: 고난과 승리
질과 유스터스와 퍼들글럼이 온갖 어려움을 무릅쓰고 애써서 아슬란의 표적을 따른 결과가 바로 시험이었다. 그리고 이 대대적이며 적극적인 대적의 공격에 아슬란의 표적은 없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말씀대로 사는 것은 자기가 잘되기 위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만사형통을 보장하지 않는다. 대신 이 세상과의 대결을 약속한다. “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내가 너희를 이 세상에서 택하였기 때문에 이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요 15:18-19).”
이것은 세상에서 당하는 일상생활의 물질적 생활고가 아니다. 그것은 물질의 영역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의 싸움은 다르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그리고 이 싸움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승리로 우리를 격려하시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이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 실체가 아니라, 이 세상의 것, 일상생활이나 물리적인 것이 실체라고 끊임없이 세뇌시킨다. 일상에서는 돈, 권력, 쾌락, 유명세, 대세와 같은 것이 실체라고 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정반대의 현실을 말씀하신다. 그런 것들은 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순간 사라지는 신기루라고.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사람은 이 세상의 실체가 그렇다는 것을 잘 안다.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이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이 세상의 실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는 이 세상에서 잘 되리라는 그 어떤 기대나 희망도 걸지 않는다. 설령 세상에서 잘 된다 해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일 뿐, 그것으로 자기 구원의 증거로 삼지 않는다. 자기가 추구한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참 실체를 우리가 만들어낸 어떤 것이라고 끊임없이 속인다. 바로 그것이 주인공 일행이 당하는 시험의 핵심이다. 녹색 옷의 마녀는 끊임없이 일행에게 질문을 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것들이 사실은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 그러므로 지하나라와 그녀 자신만이 실체라는 생각을 심어주려 한 것이다.
이 때, 퍼들글럼은 비상한 용기를 발휘한다. “모두의 몸에서는 힘이 다 빠져나갔다. 마법이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었던 것이다. 그 때 필사적으로 정신을 모으고 있던 퍼들글럼은 불 앞으로 걸어갔다. 그러고는 아주 용감한 행동을 했다.
퍼들글럼은 자신의 그런 행동이 인간이 하는 것보다는 덜 위험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퍼들글럼 역시 불에 데면 굉장히 아플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실제로 굉장히 아팠다. (...) 퍼들글럼은 스스로 겪은 고통으로 머리가 완전히 맑아졌고, 자신이 처음부터 생각하고 있던 것을 기억하게 되었다. 특정한 종류의 마법을 푸는 데는 고통의 충격만 한 것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