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캐스피언: 니카브릭과 피터 사이에서
오직 교회의 창조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방식, 성경의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 이상한 방식으로 교회를 지키려는 것, 또는 그런 방식으로 신앙생활을 하려는 것, 이것을 성경은 ‘배교’라 부른다.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한 번씩 그 예가 기록되어 있다.
레위기에서, 대제사장 아론의 장남 나답과 차남 아비후가 성막 안으로 향을 피우러 들어갔다. 제사장들이 지성소 휘장 앞 향단에 향을 사르는 것은 성도들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으로(계 5:8; 8:3-4), 오늘날 공적 예배의 대표기도에 해당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향을 반드시 번제단의 불로 사르라 명하셨다(레 16:12). 그런데 그 둘은 ‘다른 불’, 또는 ‘이상한 불’로 살랐다. 그리고 향단의 불꽃에 맞아 죽었다(레 10:1-2).
사도행전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들 소유의 부동산을 팔아 전액 헌상하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런데 막상 헌금을 하려고 할 때, 한 부분을 감추고 하나님께 드렸다. 사도 베드로는 이것을, 그들의 마음에 사탄이 충만하여 성령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지적하였다. 그러자 아나니아가 먼저 죽고, 그 뒤에 들어온 삽비라가 죽었다(행 5:1-11).
두 가지 예 모두 예배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첫 번째 예는 대표기도 시간에, 두 번째 예는 헌금 시간에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두 번 모두 하나님께서 즉시 차단하셔서, 오고 오는 만대의 교회에 경계로 삼으셨다.
그렇다면 왜 나답과 아비후가,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이렇게 행동했을까? 다시 말해서, 그들 배교의 원인이 무엇이었을까? 그들이 하나님의 방식, 성경의 방식을 알지 못해서였을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나답과 아비후는 제사장들로써,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그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모세에게 직접 훈련까지 받은 자들이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초대교회 회원들로써,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안되었을 때의 신자들이었다.
난쟁이 니카브릭에게서, 우리는 배교의 원인 중 하나를 볼 수 있다. 캐스피언은 니카브릭에 대해 이런 말을 한다. “니카브릭이 안 됐어... 우리가 신속하게 승리를 거두었더라면, 평화로운 세상에서 선량한 난쟁이로 변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즉, 니카브릭은 나름대로 승리의 시간을 정해두고 있었던 것이다. 캐스피언이 예언에 따라 수잔 여왕의 나팔을 불었는데도, 큰 도움이 임하기는커녕 상황이 갈수록 악화되었다. 텔마르인들과 그 군세가 갈수록 강성해져 갔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승리는 늦어지고 나니아의 독립은 갈수록 멀어져만 갔다. 요컨대, 그는 나니아를 너무나 사랑하는 ‘나니아 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나머지,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에 당장 일어나지 않자, 곧 조바심을 품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슬란을 배반하고, 하얀 마녀를 끌어들이려 한 것이다. 그러나 피터는 정확하게 반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아슬란이 언제 행동을 개시할지 우리는 알 수 없소. 시기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슬란 자신이 직접 고를 것이오. 그때까지 아슬란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우리 스스로 하기를 바랄 것이오.”
그는 ‘나니아 편’이 아니었다. 그는 아슬란을 너무나 사랑하는, 그래서 그가 창조한 나니아를 사랑하는, ‘아슬란 편’이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