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에드먼드: 시험을 당했을 때
터키 젤리! 터키와 그리스 등지에서 ‘로쿰(lokum)’이라 불리는 전통적 젤리 형태의 디저트로, 그 기원이 15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긴 역사를 지녔다. 18세기경 오늘날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는데, 아마 이것을 에드먼드가 먹었을 것이다. 속은 달달한 과일향이 나고 식감은 쫀득쫀득하며, 겉은 설탕 분말이 범벅 되어있다.
그러나 아무리 에드먼드 같은 어린이가 단 것을 좋아한다고는 해도, 아무리 세계 제 2차대전 당시 영국에서 사탕 한 알도 구경할 수 없을 만큼 먹거리가 부족했다고는 해도, 훌륭한 음식도 아닌 겨우 디저트 같은 하찮은 것을 먹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마녀의 꼬드김에 넘어가는 것을 보고 있자면, 그가 그렇게 어리석어 보일 수 없다.
수년 전, 마녀는 똑 같은 방법으로 디고리 커크를 유혹했었다. 사과 하나를 따서 가져오라는 아슬란의 명령을 받고 간 그 곳에서, 그 사과에 굉장한 효능이 있다는 마녀의 말을 듣고 사과를 쳐다보니, 갑자기 배가 고팠고 목이 말랐다. 그것을 꼭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먹을 것으로 시험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탄의 무서운 계략이다. 에덴 동산의 모든 열매를 먹을 수 있었던 하와가, 뭐가 부족해서 그깟 선악과 하나에 목숨을 걸었던가? 사탄은 먹을 것이 풍족한 하와를 먹을 것으로 시험했다. 먹을 것이 귀하건 풍족하건, 하와의 선택은 에드먼드와 동일한 욕망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국 동일한 어리석음이다.
안 그래도 아이들은 단 것을 먼저 먹고 나면 식사를 하기 싫어하는데, 에드먼드가 먹은 로쿰은 요술에 걸린 것이어서 자꾸만 생각나게 하고, 다른 음식은 먹기 싫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 다른 형제와 자매들과 나니아에 갔을 때, 비버 부인이 정성껏 준비해 준 영국 전통 가정식인 ‘피쉬 앤 칩스(Fish and Chips)’를 먹을 때 깨작댔던 것이다. 여기에 요술 음식과 일반 음식의 대비가 나온다. 요술 음식은 굉장히 자극적인 반면 마녀를 섬기게 하지만, 일반 가정식은 그에 비하여 밋밋하지만 건강한 음식으로 결국 아슬란 앞으로 가게 한다.
아슬란이 나니아에 돌아와 마녀를 무찌를 것이라는 말을 듣자, 에드먼드는 비버 네 집에서 나와 마녀의 성으로 질주했다. 이유는 단 하나, 터키 과자를 먹기 위해서다. 그것이 형제와 자매들을 배신하는 길이라는 것은 자기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어이 떠나야 했다. 시험은 이토록 무섭다.
그러나 그에게 아직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었다. 사실, 지금 이 상태의 에드먼드 마음속의 딜레마는 형제와 자매들에 대한 양심과 로쿰을 향한 욕구의 충돌에 기인한다. 이 딜레마는 스스로에게 그럴 듯한 ‘논리적 이유’도 만들어 낸다. “에드먼드가 못된 아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에드먼드는 단지 터키 젤리가 먹고 싶었고 왕자(후에는 왕)가 되고 싶었을 따름이다. 또 피터가 자기한테 못돼 먹은 녀석이라고 했던 것에 대해 복수도 하고 싶었다. 마녀가 자기 형제들에게 특별히 친절하게 대해주거나 자기와 똑같이 대해주기를 바란 것은 결코 아니었지만, 그러나 마녀가 형제들에게 엄청난 못된 짓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야만 했고, 믿는 척이라도 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