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디고리
디고리는 마법을 연구하는 앤드루의 조카다. 『나니아 연대기』 제 1권의 제목이 「마법사의 조카」인데, 그가 바로 제목의 그 인물이다. 디고리의 외삼촌인 앤드루는 비밀리에 다른 세계로 갈 수 있는 마법 반지들을 만들고 그것을 실험하려고 했었는데, 그는 명예도 모르는 비열한 사람이어서 자기 대신 실험을 할 만한 희생제물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조카 디고리를 내심 염두에 두고 있었다.
디고리에게는 옆집에 사는 ‘폴리’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디고리와 함께 앤드루에 대한 호기심으로 그의 작업실에 들렸다가, 마법의 반지를 만짐과 동시에 사라지게 된다. 그제서야 외삼촌의 계략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된 디고리는 앤드루에게 항의했지만, 사라져버린 폴리를 구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을 따라야 했다.
다행히 디고리는 폴리를 ‘세계와 세계 사이에 있는 숲’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둘은 처음 만났을 때보다 많이 친해졌다. 하지만 거의 그와 동시에, 둘 사이에는 묘한 경쟁이 시작되었다. 바로 자존심 경쟁이다. 서로를 겁쟁이라고 놀리면서 자존심을 건드리는가 하면, 마법 반지를 다루는 것에서나 폐허가 된 찬 왕국을 둘러보는 것에서도 그랬다.
C. S. 루이스는 디고리와 폴리의 자존심 경쟁을 통하여 그것의 실체를 잘 보여준다. 사실, 둘은 사소한 것을 가지고 서로의 자존심을 건드리면서 경쟁한다. 독자인 우리가 보았을 때, 그것들은 매우 하찮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것에 목숨을 건다. 옳고 그름, 더 나아가 이기고 짐의 문제가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다. 사람 마음의 죄성 때문이다.
모든 분쟁은 우리 인격의 모난 부분들이 부딪힐 때 발생하는데, 그것들은 우리의 죄 때문에 변형되어 불거진 부분들이다. 이 부분들이 건드려질 때 자존심 경쟁, 더 나아가 분쟁이 발생한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소한 것에 우리의 자존심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건다는 사실이, 동기의 죄성을 증명한다.
물론 우리의 자존심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과도한 방어는 돌이킬 수 없는 악을 가져오게 된다. 디고리와 폴리의 자존심 경쟁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 그는 친구에게 지기 싫은 마음에 금지된 행동을 한다. 찬 왕국의 금종을 쳐 사악한 마녀 제이디스를 깨우고, 그녀가 나니아에 오도록 한 것이다. 나중에 아슬란에게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말할 때, 그는 자신의 호기심을 억누르지 못해서 그랬다고 했다가, 그 종의 글귀가 자기에게 마법을 걸어 그랬다고 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슬란의 추궁이 계속 되자, 마침내 “그냥 마법에 걸린 척했을 뿐”이라고 고백한다.
바로 이것이 디고리 때문에 일어난 일의 본질이다. 바로 이것이 아슬란이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 그는 자기의 자존심을 내려놓아야 했다. 친구 폴리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했던 바로 그것을 포기해야 했던 것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디고리가 자기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나아가 폴리는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자, 이제 아슬란은 그에게 임무 하나를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