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1. 미나스 티리스

 그 어떤 도시보다도 견고한 도시. 악마 사우론이 직접 온다 해도 함락 시킬 수 없는 도시. 『반지의 제왕』 저자인 톨킨 교수는 남왕국 곤도르의 수도 미나스 티리스(Minas Tirith)를 이렇게 묘사하였다. 그는 엘렌딜이 누메노르 인들과 함께 중간계에 망명하여 나라를 세웠을 때, 곧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되었다고 설정하였다. 이것은 물론 ‘선택된 백성’이 남북으로 분열되었다는 구약성경의 영향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왕국 곤도르의 수도인 미나스 티리스가 『반지의 제왕』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당연하다. 작품을 읽다 보면, 톨킨이 곤도르의 역사와 함께 그 수도인 미나스 티리스의 묘사에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가 하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먼저, 미나스 티리스는 남왕국의 수도이다. 구약성경의 이스라엘 역사에서 남왕국은 유다이고, 유다 왕국의 수도는 예루살렘이다. 신약성경으로 넘어오면, 예루살렘은 교회의 표상이다. 신약성경의 저자들은 교회를 새 예루살렘, 하늘의 예루살렘 등으로 묘사한다(갈 4:26, 히 12:22, 계 21:1-2). 여기서 미나스 티리스의 의미가 등장한다. 미나스 티리스는 모두 일곱 층의 반원형으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꼭대기에는 왕궁과 백색의 탑이 있다. 도시 전체는 흰 색이어서, ‘백색의 도시’로도 불린다. 여기서 일곱은 성경에서 완전수다. 또 백색은 성결을 의미하기도 하고, 혼인식 때 신부의 색깔을 나타내기도 하다. 계시록에서 새 예루살렘은 어린 양의 신부로 묘사된다(계 21:9-10). 즉, 미나스 티리스는 교회의 상징인 것이다. 

 또 미나스 티리스는 ‘왕의 도시’이다. 곤도르가 왕국이니까, 그 수도는 ‘왕의 도시’로 불리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남왕국 곤도르는 왕국이지만, 『반지의 제왕』 시점에서는 왕이 없다. 곤도르 제 32대 왕인 에아르누르(Eärnur)가 모르도르의 마왕과 싸우다가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부터 곤도르는 왕의 섭정이었던 후린 가문의 마르딜(Mardil)로부터 시작하여 대대로 왕의 전권을 행사하는 섭정들에 의하여 다스려졌다. “새로 섭정이 되는 이들은 ‘왕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그의 이름 아래 나라를 다스린다’는 서약을 하고 취임하였다(『반지의 제왕』 제 7권 부록 A 57쪽).” 그들은 나라의 상징인 백색 칼라에 겸양을 의미하는 검은색 가운을 입었다. 여기서 미나스 티리스를 다스리는 섭정의 의미가 등장한다. 교회를 상징하는 ‘왕의 도시’ 미나스 티리스에는 왕이 없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계시지 않는다. 그래서 세상에 남겨두신 것이 바로 ‘목회자’이다(요 21:15-17, 엡 4:11). 섭정이 ‘왕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그의 이름 아래 다스린다’는 서약을 하듯이, 목회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교회를 돌보기로 서약하고 안수를 받는다. 그리고 16세기 이래로 오랫동안 목회자들은 흰 칼라에 검은 외투 또는 가운을 입어왔다. 

 그런데 “왕의 귀환” 편에 등장하는 곤도르의 섭정 데네소르 2세는 막상 왕위 계승자인 아라고른이 등장하자 그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맏아들 보로미르도 처음에는 곤도르에 왕이 없으며 왕이 필요 없다고 했었다. 그렇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워 올수록, 펠렌노르 평원 전투와 같은 ‘최후의 전투’가 다가올수록, 목회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언행을 보인다. 이것이 바로 ‘배교’이다(살후 2: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