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순 권사(배우리한글학교장, 연합교회)
기껏해야 여섯 살 정도의 어린 계집아이는 외할머니를 따라 논길,밭길 그런 길들을 많이 걸었습니다. 한쪽 발을 절뚜룩거리는 할머니의 불편한 행보 탓에 걷기가 힘들거나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행여나 할머니 손을 놓치면 영영 집으로 돌아오지 못할까봐 살집없이 깡마른 할머니 손을 제 손가락이 닿아 겹칠 수 있을 만큼 꼭 잡습니다. 언제나 하얀 소복차림이신 할머니는 한 손엔 지팡이를 다른 한 손은 손녀에게 잡히신 채로 둑길을 걷습니다. 바람에 펄럭거려도 감쌀 수 없는 할머니의 치마자락은 자꾸만 내 걸음을 멈추게합니다. 그래서 걷기가 쉬웠나봅니다. 오뉴월의 둑길을 따라 가며 돋나물도 쳐다보고 엉겅퀴도 만나고 질경이, 다담이, 끝순이도 만납니다. 유일한 할머니와의 대화는 꽃이름을 물으며 시작됩니다. “할머니, 이건 뭐야” “애기 똥풀, 며느리 배꼽, 소리쟁이......”건성으로 듣고 생각없이 또 묻습니다. “이건 뭐야 ......”물을 때마다 주저없이 대꾸하시는 할머니는 꽃들의 이름을 정말 많이 아시는 것 같습니다. “개똥이, 쇠돌이, 끝순이.......” 내 마지막 물음에 대한 할머니의 답입니다. 대답이 궁한 할머니의 답인 것도 같고 무슨 사람 이름을 말하시는 것 같아 물음에 흥미를 잃었습니다. 더 이상 묻질 않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꽃들의 이름은 다 풀꽃이여, 들에 피었으니께 다 들꽃인겨”
글쟁이들이라면 한번쯤 소재로 삼아 보는 [꽃]은, 여인이고 사랑이고 삶이며 인생이기도 합니다. 갖가지의 의미를 담아 상징적인 표현으로 작품에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데이지, 에델바이스, 시네라리아, 스프레이...... 국화과에 속하는 들꽃의 이름입니다. 익숙한 꽃들이지만 그래도 들꽃의 느낌과 거리가 멉니다. 들꽃은 우리말이라야 들꽃 같습니다. [무릇, 하늘타리, 싸리, 수박풀 깽깽이풀, 뚱딴지, 토끼풀, 처녀치마, 며느리 밥풀...... 할머니꽃] ...... 며느리, 애기, 처녀, 할머니도 있고 수박도 있고 딸기도 있습니다. 유안진씨의 ‘들꽃 언덕에서’ 라는 시에는 들꽃에 향기가 있다고 합니다.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값비싼 화초는 사람이 키우고 값없는 들꽃은 하나님이 키우시는 것을, 그래서 들꽃 향기는 하늘의 향기인 것을........ 들꽃 언덕에서 알았다.
기억에 남은 단 하나의 꽃이름 ‘들꽃’. 어느 것 하나, 이름 정하여 부르지 않아도 되는 들꽃, 꽃이름이 아무래도 좋은 들꽃. ...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들꽃의 이름은 할머니의 향기인것을 사랑인것을 그리움인 것을 그리고 나의 추억인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