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여유를 부리며, 해도 되고 안해도 될 일...... 커피를 타는 것이다. 커피가 없는 시절에도 글쟁이들은 주옥 같은 글들을 쏟아내었건만 어설픈 나는 폼이라도 잡아야 비슷하게나마 몇 줄이라도 쓸 수 있을 것 같아 습관처럼 이 일을 한다. 글을 쓰기 위한 시작의 신호인 셈이다. 신호가 끝나면 하얀 스크린 위에 까만 점을 찍기 시작한다.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커피는 오늘도 옆에 있어야하는 빠질 수 없는 소품의 역할을 하고 있다.
 누구는 글을 쓸 때 몇 날 며칠 세수도 안하고 손,발톱 정리도 안 해야 글 다운 글이 나오고 어떤 이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에 쳐 박혀 있어야 원하는 글이 나온다고 한다.
 글쟁이들을 소개하는 일반적인 사진들을 보면 대체로 이런 모습이다. 먼곳을 바라보는 그윽한 인상의 사진, 책으로 가득 채워진 책장을 뒷 배경으로 찍은 사진, 원고지 가득 쌓아 놓고 팬대를 잡은 손의 자세로 골똘히 무언가를 사색하는 듯한 모습의 사진...... 이런 모습이라야 문학 작품들이 금세라도 뻥튀기 튀겨내듯 나오는건지, 아님 꾀죄죄한 모습을 하고 있어야 진짜의 글이 나오는건지.
 누구나 저마다의 깜냥이 있기에 그럭저럭 남들과 어울려가며 흉내도 내보고 긁적거리는 것이 아닐까? 냉장고를 열고도 한참을 생각해야 목적을 달성하고 큰 차이도 없는 날씨 변동에 무릎이 시리다하고 어깨가, 허리가 뻐근하다고 하는 처지인데 무슨 욕심이 더 있을까. 시를 읽은 날은 시인이 되어 말이 짧아지고 소설을 읽은 날은 하루 종일 그 작가와 놀러 다닌다. 그들의 능력과 생각이 또 삶이,부족한 감성을 채우는 충전기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말을 타고 달리는 기수는 앞만 보고 달리니 볼 수 있는 시야가 좁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낙마의 경험을 한번 쯤 겪은 사람은 떨어진 그 자리에서 달려 온 길과 아직 더 달려 가야 할 남은 길을 볼 수 있게 되고 전체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도 한다.
 천양희 시인의 ‘벽과 문’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시다.[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 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 걸고 살기는 열어 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엔 만들지 말아야 할 벽들이 너무 많다.
 벽은 막힌 담이다. 허물어야만 앞이 보인다. 떨어져 봐야 못 본 세상을 보는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자는 경이로움을 발견하는 시력이 떨어짐을 걱정해야하고 일등 기수는 말에서 떨어지는 경험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철저한 벽이 있다. 찬사를 지속하기 위해 그 벽을 더욱 굳건히 쌓고 있는 것이다. 특별히 내세울 것도,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는 평범한 글쟁이는 안간힘을 쓸 필요가 없다. 경쟁이 없는 일상의 여유를 부린다. 커피를 마셔야 글을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커피를 탈 수 있는 여유로 이 세상 최고의 일을 하는 것이다.
 벽에다 문을 내는 것. 그래서 보이지 않는 다른 세계를 열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