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수 목사(익산봉곡교회 담임)
우리는 살아가면서 상대방의 진심을 오해할 때가 종종 있다. 상대방이 선으로 나에게 대하였는데 그만 상대방의 진심을 오해하여 나쁘게 받아들이는 경우이다. 그 결과로 마음이 상하고 관계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가정에서 가족간에도 일어난다. 상대방을 위해서 선으로 한 일인데도 나쁘게 받아들여서 마음을 상해하고 그 결과 가정에 화평이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 소한 것들이지만 그러한 경우들이 종종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방의 진심을 잘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선으로 대한 것인지 나쁘게 대한 것인지 잘 분별하는 지혜와 판단이 필요하다.
사울 왕은 다윗의 행동을 오해하였다. 다윗은 사울을 해할 마음이 전혀 없는데 그만 오해를 하여서 다윗을 정적으로 여기고 그를 제거하려는 일에 몰두한 것을 본다. 결국 그러한 오해를 인하여 사울은 피폐한 인생을 살게 되었다.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의 인생이 불신앙적인 모습으로 전락이 되고 말았다. 그 결과 그에게서 성령이 떠나고 그만 악신에 사로잡혀서 불행한 인생으로 전락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마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말았다. 오해의 마음은 이처럼 사람을 피폐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불행한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요인인 것이다.
오해는 무지해서 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모든 오해는 그 출발점이 무지이다. 알지 못해서 그렇다. 이해하지 못해서 그렇다. 부분만을 알고 전체를 몰라서 그렇다. 단편적인 지식으로 전체를 판단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는 웃고 있어도, 마음으로는 울고 있을 수 있다. 겉으로 울고 있어도, 속으로 웃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오해의 소지가 있다. 그리고 한 마디의 언어로 그 사람의 전체를 판단하는 것도 오해할 수 있는 위험한 생각이다. 한 번의 실수로 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몰아가는 것은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기 지식에 사로잡힐 때 오해가 있게 된다. 사람이 자기 생각에만 붙들려 있게 되면 상대방을 이해할 수가 없다. 히틀러의 독선과 오만도 이런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결국은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하는 인류의 가장 큰 비극과 불행을 가져오고야 말았던 것이다.
오해는 실로 무서운 것이다. 오해하므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 따라서 오해가 있는 곳에는 평화를 기대할 수 없다. 오해가 있는 가정은 불행하다. 가정이 깨어지는 불행을 초래한다. 오해가 있는 곳에는 분열과 다툼이 일어난다. 오해는 시기와 싸움과 분쟁을가져다주는 마귀적인 것이다. 오해를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오해를 불식하고 사랑의 마음으로 관용의 마음을 소유하고 살아가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