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송자

 

촌놈이라 서러웠던 날,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인지, 봄, 가을, 소풍이 조금 멀리 떠나는 수학여행으로 바뀐 듯하다. 직지사가 먼저였는지, 미군 부대 불이 밤마다 반짝여 별로 착각하던 금오산이 먼저였는지 잘 모르겠다. 작은 합승 하나에, 우리 반 전체 학생들을 구겨 넣고 떠난 여행이었다. 숨 막히는 조그만 합승 안에서 노래를 많이 불렀던 것 같다.

 처음으로 가장 멀리 간 곳이 경주불국사다. 이 수학여행은 특별한 것이었는지, 엄마는 하얀 타이츠와 운동화를 사고, 층층이 주름 잡힌 꽃무늬 원피스를 만들어 입혔다. 우리를 태우고 갈 합승이 기다리는 건너편 방천을 향해, 가방을 등에 맨 동네 아이들은 바지를 둥둥 걷고 냇물을 건넜다. 엄마는 옷이 젖으면 안 된다며 집안일을 돕는 아재 등에 업혀 냇물을 건너게 하였다.

 경주로 가는 완행열차의 차창은 친구들 표현으로는, 억수로 커서, “하늘만큼 땅만큼” 큰 것이었다. 차창 밖으로 스쳐 가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며, 신기루를 만난 아이들처럼 연신 우~~와! 우~~와! 감탄을 했다. 그러다 정말 모두가 뒤집어질 일이 생겼다. 자동차들이 물위로 쌩쌩 달리는 것을 본 것이다. 모조리 한쪽 편 창문에 매달렸다. 그 놀라운 광경에 열차 뚜껑이 열릴 만큼 소리들을 질렀다.

 베토벤의 9번 심포니보다 더 환희에 찬 아이들의 고음 사이로, 비수처럼 날아온 한마디가 작은 가슴에 꽂혔다. 내 귀를 의심할 소리, “촌놈들” 분명 내 선생님의 목소리였다. 머리가 아득해지고 갑자기 속이 울렁거렸다. 기차에 타고 있는 다른 승객들에게 선생님을 부끄럽게 한 “촌놈들”이라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왜관을 지나면서부터, 주렁주렁 달린 능금이 빨갛게 익어가는 놀라운 광경을 보고도 입에 군침이 돌지 않았다.

 아스팔트를 처음 보았다. 빛의 굴절로 인하여 나타나는 물거울 현상을 알리 없었던 나는, 촌놈인 것이 정말 미안하고 서러웠다. 대구에서 기차를 갈아탔는지도 기억에 없을 만큼 머릿속에선 “촌놈들, 촌놈들, 촌놈들……” 맴돌았다. 복잡한 머리로 경주 시내를 걸어가다, 열린 하수구에 “이 촌년”의 오른발이 풍덩 빠지고 말았다. 선생님께서 또 실망하실까 봐, 한쪽은 뽀얀 운동화, 다른 쪽은 시커먼 시궁창으로, 질퍽거리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절룩절룩 걸었다.

 밤이 이슥하도록 선생님들이 모두 잠든 시간을 기다렸다. 싸늘한 물에 운동화와 양말을 몰래 빨아 이불 속에 집어넣고 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이불에 실례를 한 것처럼 얼룩져버렸다. 어두운 곳에서 소리도 못 내고 빤다고 빨았으나, 빨래를 해본 일이 없는 내가 땟국 물이나 뺐을 것인가 말이다. 일이 점점 더 커져서, 얼룩진 운동화와 스타킹을 가방 속에 숨겨놓았다. 고무신에 맨다리로 토함산에 올라가며 선생님 눈을 피하느라 멀미를 했다. 긴장이 극에 달하여 첨성대 아래서는 구토를 했다.

 해 오름도, 석굴암도, 불국사도, 다보탑도, 석가탑도, 박물관도, 첨성대도 촌년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선생님 머리가 어디로 돌아가는지, 뒤 꼭지만 보고 따라다니느라 아무것도 본 것이 없다. 빨리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완전 초주검 상태로 집에 돌아와서 엄마와 나눈 대화;

 엄마: 불국사 좋더나? 재미있게 구경 잘했나?
 나: 항개도 안 좋더라! 나는 절대로 수학여행 안 갈끼다 시끕했다!

 나라는 아이는 애초부터 그렇게 자존심으로 똘똘 뭉쳤던 것 같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가까운 도시로 진학을 하고 집 근처에 사는 건어물 집 영희가 친구가 되었다. 매일 만나던 영희가 일요일이면 성당을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성당이란 곳을 가보았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하얀 보자기를 천사같이 쓰고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친구도 천사 같았다.

 당장 엄마에게 “시집갈 때 쓰는 것” 하나 사달라고 하였다. 복음을 들어본 일도 성당을 가보신 일도 없는 엄마는 몇 군데 다녀보시다 끝내 구하지 못하셨다. 나는 미사보가 없어 영영 성당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영희가 나를 “촌년”이라고 할까 봐, 어디서 사는 것인지 물어 보지 못했었다. 친구는 내 손윗동서가 되어 브라질에 산다. 얼마 전 친구에게 이야기했다.  “촌년”이 그때 미사보를 구할 수만 있었다면, 수녀원으로 갔을 것이라고…… 50년이 지나서야 꺼내 놓은 것이다.

 촌년은, 하나님의 섭리에 이끌려 연어처럼 대양을 건너왔고, 깊고 넓은 세상 바다를 돌고 돌아서 일몰의 석양을 등에 지고 다소곳이 그 나무아래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