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임춘행과 김경수라는 국악단이 있었다. 1960년대 한참 국악이 활발했을 때 무대에서 “선화공주는 병신이라네~~염통이 반쪽 반쪽 밖에는 없다지야” 하면서 국악 배우들이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서 돌아치면 얼마나 멋이 있어 보이는지 사춘기에 아이들이 반 미쳐 돌아갈 지경이였다. 무엇에 열중하면 해 내고 마는 집착이 강한 성격이었던 나는 배우가 되고 싶어 그들처럼 한창 들떠 있었다. 나는 겁도 없이 앞뒤 생각도 않해 보고 대 여섯명의 동창생들과 함께 기차를 타고 집을 나가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저질러 버렸다.
 우리는 부산에 내렸다. 그 추운 겨울에 단칸 방을 얻어 호강만 하던 어린것들이 천을 사서 솜을 넣고 얼기설기 듬성듬성 꿰매 이불을 만들어 밤에 자면서 서로 잡아 당기며 추위에 떨던 긴긴 밤을 생각하면 한심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안해보던 밥을 짖느라 분명히 밥을 지었건만 반 죽이 되버리고 콩나물 국에는 콩비린내가 진동했다. 국악원을 찾아 소리도 배우고 춤도 배우면서 돈이 떨어질 때까지 견디다가 결국은 한 달만에 풀죽은 망아지 같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헤어졌다. 집이 가까워지자 나는 집 멀리서 서성거리며 집안을 들여다 보았다.
 그때 집을 나간 딸을 날마다 기다리시던 아버지가 망부석 같이 대청에 서 계시다가 거리가 먼데도 한 눈에 나를 알아보셨다. 신발도 신지 않으시고 뛰쳐나와서 나를 안고 집으로 들어가셨다. 혹 다시 달아날까봐 마음이 몹씨 불안하셨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한 번도 나에게 “왜 집을 나갔느냐? 어데 있었느냐?” 묻지 않으셨다. 묻기는 커녕 말 잘듣고 집에 있던 일곱 형제를 제껴놓고 집나가 부모의 마음을 갈기 갈기 찢어 놓은 불효막심한 나에게 매대신 사랑으로 식사 때마다 아버지와 겸상을 받게 하셨다. 식구들의 입을 어떻게 막아 놓으셨는지 아무도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때 어린 마음에도 사랑이 그렇게 아픈 매인줄을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