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시냇가)가장 중요한 한가지(행2:14-36)
2016/04/14 23:31 입력  |  조회수 : 1,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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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목사(사랑의교회 담임)

 빛의 속도로 세상은 바뀌어 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하루에도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러한 세상에 우리가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가야 하는 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당신의 인생의 축은 무엇입니까?
 우리 인생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의해 움직이기 마련입니다. 마치 시계추가 외줄에 매달려 흔들리듯이, 인생도 중요한 그 한 가지에 의해 지배됩니다. 지금 우리들은 어떤 외줄에 매달려 있습니까? 베드로는 예루살렘 성전 솔로몬 행각에 모인 수천 명의 군중 앞에서 외쳤습니다.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여기 <증인>이란 단어는 가볍게 사용할 말이 아닙니다. 이 단어에서 <순교>란 단어가 파생되었습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순교한다는 뜻입니다. 즉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란 말은 달리 말하면 <우리는 이 일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가장 중요한 것을 위해서만 목숨을 걸 수 있습니다. 사람이 무엇을 위해 목숨을 내 놓을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은 그것이 그 사람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그의 전 생애는 그것을 위해 존재하고, 그 외의 나머지 것들은 모두 그것을 중심으로 재편됩니다. 그것은 한 사람의 생애에 질서와 방향을 가져오는 원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베드로가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즉 <이 일을 위해서라면 우리 목숨을 걸 각오가 되어 있다>고 할 때, <이 일>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우리는 베드로의 생애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인생의 중심축은 여러 번 바뀌었습니다. 본래 그는 갈릴리 바닷가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때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물고기 잡는 일이었습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물고기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뒤바뀌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날 이후로 물고기의 자리에 이제는 예수님께서 계셨습니다.  이렇게 삶의 축이 바뀌게 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그의 인생에 들어오셨기 때문이었습니다. 어느 날 물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해 낙심하고 있을 때, 예수님은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고기를 잡게 해 주셨습니다. 그는 알았습니다. 지금까지 물고기에 모든 것을 걸고 살았는데, 이제 그 물고기를 마음대로 잡게 하는 능력을 가진 분이 눈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물고기 보다 중요한 것은 물고기를 마음대로 잡는 엄청난 능력을 가진 예수님임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 온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이 날 이후로 예수님은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이 되었습니다. 그의 모든 삶은 예수님을 중심으로 재편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해서 버려야 할 것을 버렸습니다. 그는 심지어 배와 그물도 버렸습니다. 그리고 전에는 하지 않던 일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삶은 예수님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의 가정생활도 예수님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에 걸려 죽어 가는 것을 예수님께서 고치셨을 때, 베드로의 아내도 남편이 예수님께 모든 인생을 걸고 따라다니는 것을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예수님을 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합니다. 가정도, 인생도 예수님으로부터 의미를 부여받게 되길 원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예수님 안에서 발견하시길 기원합니다. 
 그 분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기하여야 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분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그 분 때문에 무엇인가를 포기하여야 합니다. 그 분을 위해서 나머지 시간과 힘을 사용하십시오. 참으로 예수님이 우리 인생을 잡아매고 있는 줄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런데 베드로에게 예수님 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생겼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청천벽력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이제 예루살렘에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과 서기관들에게 팔릴 것이고, 그들은 나를 죽일 것이다> 이 말씀을 들었을 때 베드로의 마음은 복잡해졌습니다. 뭔지 모르는 불안과 두려움이 그를 혼란스럽게 했습니다. 이런 감정은 예수님을 삶의 중심으로 모시던 그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말씀은 이루어졌습니다. 설마 했는데,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것입니다. 다른 동료들은 모두 도망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고 있었는데, 그 예수님을 포기하고 도망한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베드로는 가야바의 법정에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가장 두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도 세 번씩이나 말입니다. 그 순간 예수님은 더 이상 그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안위>였습니다. 그의 마음에서는 이미 발 빠른 계산이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안 돼! 어서 빨리 예수를 모른다고 말해라> 그리고 그는 그 마음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난, 저런 사람 모릅니다> 예수님을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분으로 삼고 살다가, 어떤 일로 인해 예수님을 인생 밖으로 축출하는 것은 베드로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결정적 순간이 올 때, 예수님을 인생 밖으로 쫓아냅니다. 어떤 사람은 아주 쫓아내지는 않지만, 인생의 변두리로 몰아냅니다. 예수님은 더 이상 가장 중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 순간부터 <악세사리 예수님>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생각나면 예수님을 붙이고, 불리하면 예수님을 떼어버립니다. 여러분은 혹시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베드로는 예수님을 몰아낸 후, 자신의 안위를 가장 한복판에 두었습니다. 이젠 안전이 최고였습니다. 그는 은밀한 골방을 찾았습니다. 지금은 가장 중요한 게 안전이었으므로, 숨고 볼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골방에 가 보니, 자기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이미 거기에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의 은밀한 휴식 공간이었던 그 골방이 이제는 예수님을 몰아낸 사람들의 은신처가 되었습니다. 그 제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이었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이렇게 된 마당엔 가능한 빨리 예수님의 냄새를 씻어 버리고, 안전을 위해 행동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골방을 가장 안전한 곳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그 방엔 질식할 것 같은 적막감과 두려움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배우게 됩니다. 예수님을 더 이상 가장 중요한 분으로 여기지 않게 될 때, 자신의 안위를 최고의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될 때 그런 사람은 <골방 인생>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숨어 있는 동안에 예루살렘은 빌라도와 헤롯,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의 세력이 판치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쫓아내고, 자신의 욕망과 안위만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게 될 때 세상은 사단의 손에 넘어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들의 소유가 되고 맙니다.
 기꺼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의 베드로는 더 이상 골방 인생이 아닙니다. 그는 골방 밖으로 나왔습니다. 나왔을 뿐 아니라, 수천 명의 군중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설교하였습니다.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이 일을 위해서라면 우리는 기꺼이 목숨을 내 놓을 수 있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안위를 돌보지 않았습니다. 안위는 이제 더 이상 그의 인생의 가장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뀌었습니다. 베드로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다시 예수님이 그의 인생을 재구성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자신의 안위만 돌보던 사람이 예수님을 가장 중요한 분으로 모시게 되었습니까? 그 이유는 지난번에는 그가 <죽은 예수님>을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 그의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붙잡히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야바 법정에서 재판받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예수님을 붙잡고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몰아낸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다릅니다. 베드로는 더 이상 죽은 예수님을 붙잡고 있지 않습니다. 32절을 보세요.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그 예수님은 살아나셨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베드로의 설교의 주제는 예수님의 부활입니다. 예수님은 살아나셨다! 그것이 바로 자신이 목숨을 걸 수 있다고 한 <이 일>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그의 인생에 가장 중요한 분이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그에게 가장 중요한 분이되시자, 삶 전체가 달라졌습니다. 그는 더 이상 골방에 숨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길거리를 활보하게 되었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에 끌려가서도 당당했습니다. 그들 앞에서 조금도 굴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능력이 있었습니다. 앉은뱅이를 향해 명령하자, 그가 일어나는 기적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의 인생의 한 복판에 서시자, 그는 딴 사람이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불안한 세상 가운데에서 여러분의 인생을 온전히 예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살아 계신 예수님 안에서 삶을 재편 하시기를 바랍니다. 골방 인생에서 빨리 탈출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모든 시간과 정열과 물질의 사용 기준을 다시 재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여러분의 인생은 가장 아름답고 보배로운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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