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명환 목사(크리스천위클리 발행인)
LA 지역 한 교회의 창립기념 감사예배에 참석했다. 많은 숫자의 성도들이 모이는 대형 혹은 중형교회는 아니었으나 창립 이래 한 영혼을 천하와 같이 생각하며 한결같이 헌신해 온 교회로 알려진 교회다. 예배 중 축사에 나선 한 목사님이 “여러분의 교회가 행복한 교회가 되기 위해서라면 이제 교회 부흥을 포기하십시오”라고 말했다. 느닷없이 부흥을 포기하라니? 담임목사도 성도들도 잠시 숙연해지는 모습이었다. 교회가 개척되면 부흥은 당연지사고 그것도 왕창 부흥해야 하나님이 진정 함께 하시는 교회란 패러다임에 우리는 길들여져 있다. 그런데 창립기념의 자리에 와서 부흥을 포기하라는 말은 충격적인 선언이었다. 요즘 교회가 쉽게 부흥하지 않는다는 솔직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고 전제한 그 목사님은 교회 부흥, 교회 부흥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모이는 숫자로만 교회를 판단하려고 애쓰다 보면 목회자도 탈진하게 되고 성도들도 숫자 노이로제, 부흥 노이로제에 걸려 교회생활이 행복하기는커녕 스트레스요, 병이 된다는 요지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아예 부흥을 포기하고 내면적인 영성에 충실하면서 이미 가진 것에 감사하고 작은 공동체의 유익과 장점을 살려가는 교회가 될 때 오히려 생명력이 충만한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결국 대형교회가 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는 용기, 대형교회의 제왕적 목회자가 되겠다는 야심을 내려놓은 용기가 필요하다는 말로 들렸다. 그분의 ‘부흥 포기’란 말이 오랜 여운으로 내 가슴에 남았다.
사실 모든 교회는 부흥하고 싶어 한다. 그 부흥의 끝은 대형교회다. 대형교회가 되는 것이 부흥의 증거라고 믿는다. 그러나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붙들어 구원에 이르게 하는 영적 부흥보다는 외형적 부흥, 물질적 부흥만을 고집하는 데서 문제는 탄생한다. 교회는 왜 대형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대형교회만을 부흥의 목적으로 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런 진지한 질문 따위는 세계 최대, 세계 최고란 허황된 찬사에 매몰되어 제대로 주목받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몇 년 전 돌아가신 옥한흠 목사님이 서울 사랑의 교회 오정현 담임 목사님에게 오래 전에 썼다는 편지가 최근 인터넷을 통해 공개되었다. 몇 번이나 다시 읽어 보았다. 사실 그 말씀은 단지 오정현 목사님에게만 묻는 질문이 아니라 오늘날의 한국인 목회자 모두에게 던지는 충고요, 직언이란 생각이 들었다. “권력과 밀착하려는 성향이 강한데 이 이유가 무엇인가?… 사랑의 교회가 비록 강남에 위치해 있지만 이 나라의 1%도 안 되는 강남의 가진 자들을 위한 교회라는 이미지를 준 일이 별로 없다. 그러나 오 목사는 이상하게도 밖으로는 귀족적인 이미지를 풍기고 있다.”목사의 귀족적 이미지는 대개 대형교회 목사의 전유물이다. 어디를 움직여도 대형교회 목사들은 부산하고 거창하다. 목사에게 권력은 있어서도 안 되고 더구나 귀족은 절대로 아니다. 그런데 처신하는 것을 보면 귀족보다 더 고귀한 인물인 것처럼 행동하는 경우를 본다. 이 옥 목사님의 지적은 그래서 모든 목사들에게 주는 따끔한 충고요, 대형교회 목사에겐 더욱 그렇다.
그는 또 “사람에게 멸시당하고 사회에서 버림받으면서 교회를 마지막 보루로 생각하고, 목회자의 따뜻한 손길을 기다리는 불쌍한 사람들이 사랑의 교회 안에도 부지기수로 많다. 그들을 위해 오 목사가 무엇을 해주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강단에서 몇 마디 하는 립서비스는 가증스러운 짓이라고 생각지 않는가? 밖으로 도는 시간을 절약해서 주님이 가까이 두기를 원하시는 이런 자들과 함께 울고 웃어 주는 목회자가 진정한 주의 종이요, 제자라고 생각하지 않는가?”라고 쓰고 있다. 이 말씀 앞에 과연 발가벗은 듯 부끄럽지 않은 목사가 몇이나 될까? “세계적인 경제 위기와 함께 국내 서민층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때에 그들의 정서에 역행하고 부자 교회의 허세를 부리는 것같이 보이는 이벤트(창립 30주년 기념 잠실 체육관 행사, 작년에 이어 다시 계획하는 손니치 여행 집회)들을 계획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이 또한 얼마나 날카로운 지적이신가? 어디 이게 사랑의 교회만을 두고 하는 말씀인가? 부자교회의 허세! 이 허세를 위해 모든 성도들은 그렇게 교회 부흥을 갈망하고, 모든 목회자들은 그렇게 대형 교회를 갈망하는 것일까? 그러니까 차라리 ‘부흥 포기’란 역발상이 가슴에 와 닿는 현실에 우리는 직면해 있는 것이다.
사랑의 교회 오정현 목사님은 한국 교회 ‘차세대 리더’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한국 교회의 희망이고 미래였다. 그런데 최근 박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과 더불어 새 예배당 건축 문제로 리더십에 상처를 입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사랑의 교회의 내부사정은 잘 모르겠지만 이 일로 한국교회가 더 크게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옥 목사님의 이 숨어 있던 편지는 수신자가 오 목사님으로 제한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모든 개신교 목사들에게 전달되어야 할 고언이요, 회개 선언문이라고 생각한다. 덮어놓고 대형교회라면 목매는 오늘날의 무분별한 대형교회 지향주의는 옥 목사님의 말씀을 참고서로 삼아 진지하게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의 방향을 다시 물어야 하지 않을까?‘부흥 포기’, 이 말이 교회가 새로워지는 우리 시대의 키워드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