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용주 목사(봉헤치로 제일교회 담임)
클락(Clark)
사람은 누구나, 삶이 팍팍해지고 주변 상황에 짓눌리게 되면 도피처를 찾기 마련이다.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거나 확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마음에는 그 어떤 기쁨이나 평화가 단 한 방울도 남아 있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위로가 그냥 빈말같이 느껴지며, 모든 것이 곧 머리 위로 무너져내려 질식시킬 것만 같다.
클락이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젊었을 때 건축가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게 되면서, 그는 자기 꿈을 접고 아내의 꿈인 로스쿨 등록금을 대기 위하여 가구점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가구점은 잘 되지 않고, 설상가상으로 곧 이혼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그는 자기 돈으로 마련한 집에서 나와 매장에서 먹고 자고 하게 되었다. 매장을 도피처로 삼은 것이다.
그러나 매장은 도피처가 될 수 없다. 그 곳에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 일에서 어떤 의미도 발견할 수 없다. 그 일은 아내를 위해 시작한 것이었는데, 지금 그녀는 그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매장은 클락과 애증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가구점 이름이 좀 특이하다. ‘클락 선장의 오스만 제국(Cap’n Clark’s Ottoman Empire)’. 해적 선장과 이슬람 제국을 결합한 명칭이다. 그는 가게 홍보를 위하여, 직원인 캣과 바비를 동원하여 텔레비전 광고 영상을 찍는데, 사실 그것은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경쟁사인 ‘빅 웨인의 가구 헛간(Big Wayne’s Furniture Barn)’를 모방한 것이었다. 딱 보기에도 그 광고는 서부 카우보이 개념에 일관되게 충실하고, 무엇보다 깔끔하다. 그러나 클락의 광고는 업체 이름부터 두 가지 개념을 한데 묶은 것이라서, 뭔가 일관성이 없고 무척 산만하다. 핸드 캐리 카메라로 광고 촬영을 담당한 직원 바비조차, “사장님은 해적 선장이세요, 아님 술탄이세요?” 하고 혼란스러워 할 정도다.
메리(Mary)
클락이 도피처를 찾는 사람이라면, 자기 안식처가 무너진 경험을 통하여 아예 외부 세계에는 동일한 안식을 주는 도피처란 없다고, 도피처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린 사람도 있다. 그러고는 자기 내면으로 숨어들어가, 그 곳을 자신만의 도피처로 삼는 것이다.
메리가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하지만, 사실은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자기 내면의 안정을 방해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텔레비전 광고에 홍보되는 책을 낸 성공한 심리 상담사이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다.
어머니의 정신질환은 메리가 어렸을 때 살던 집이 재개발로 인하여 무너져 내린 사건에 기인한다. 재개발 직전까지, 어머니는 집에서 버텼다. 그러는 동안 그녀는 집의 모든 창문을 닫고 커튼을 친 후, 자기 딸이 밖을 보지도 못하게 하고 나가지도 못하게 했다. 그렇게 하면 집이 철거되지 않을 것이라 믿은 듯하다. 그러나 집은 결국 철거되었고, 모녀는 그들의 안식처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보아야 했다.
그런데 메리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을 보면, 역시 창에 커튼이 드리워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녀는 자기 어머니가 씌운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갈 수 없기 때문에, 결국 그녀는 자기 내면을 도피처로 삼은 것이다.